권선필 교수 |
넓다리뼈는 인간의 몸 속에 있는 200여 개 뼈 중 가장 큰 뼈로 고관절과 무릎을 연결하여 걷고 뛰는 데 필수적인 뼈다. 이 넓다리 뼈가 부러지면 대부분의 동물은 조만간 죽을 수 밖에 없다. 움직이지 못하니 냇물에 가서 물을 마실 수도 없고,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치유된 넓다리뼈는 뼈가 부러졌어도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러진 넓다리 뼈가 다시 붙어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데는 6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그 동안 다른 인간으로 부터 도움을 받아 먹고 살면서 부러진 다리를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이게 바로 문명의 증거라는 것이다.
마가렛 미드가 다친 사람을 돌보고 치유하는 돌봄이 인간 문명의 첫 번째 증거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할머니와 이모 혹은 고모로 구성된 소수의 출산공동체가 인간의 첫번째 공동체라고 말한다. 뼈가 부러진 사람을 돌보든, 갖 태어난 아이와 산모를 돌보든 동료 인간을 돌보는 것이 인간 문명의 출발이며 동시에 인간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첫번째 활동임이 분명하다.
국가 소멸이나 인구 소멸이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인의 시간 지평선 위로 떠올라 한낮으로 향하고 있다. 소멸이 나타나는 근본 원인은 결국 출생과 돌봄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태어나는 아이 울음소리가 그쳤고, 어렵고 힘든 사람에 대한 돌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와 산모에 대한 것이든, 다양한 형태의 장애를 가진 이웃에 대한 것이든, 죽음을 앞둔 노인을 돌보는 것이든,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에 대한 지원이든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 돌봄이 부족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돌봄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요소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돌봄은 주로 정부의 지원이나 돈을 가지 해결하는 시장방식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대규모 관료제적 방식은 근본적으로 돌봄이 가지는 '소규모 공동체'적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아이가 태어나는 데 조산원이나 산부인과가 필요한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이를 잘 키워줄 수 있는 가족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모는 출산의 고통에서 회복하고, 아기는 먹고 자라는 데 필요한 심리적 사회적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 필요하다.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이 2006년 이후 총 400조 원가량 투입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계출산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저출산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잘 못 됐기 때문이다. 마가렛 미드나 로빈 던바의 주장처럼 출생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돌봄공동체 출산공동체의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출산공동체와 태어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는 돌봄공동체가 튼튼하고 지속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여성은 아이를 갖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성이 아이를 갖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선택을 했을 때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서 잘 자랄수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출생이 이뤄지고 출생율은 회복될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으로는 이렇게 출생과 돌봄 공동체가 나타난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그로 인한 결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2,3세대가 지나야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당분간 저출생고령화의 시기를 겪을 것이며, 그 시기에 태어난 다음 세대에 의해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저출생고령화를 해결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었다. 오히려 진행 중인 저출생고령화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돌봄인 것 같다.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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