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지속가능한 사회의 기초가 되는 '돌봄 공동체'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목요광장] 지속가능한 사회의 기초가 되는 '돌봄 공동체'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 승인 2024-07-24 10:29
  • 신문게재 2024-07-25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권선필 교수
권선필 교수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에게 어느 학생이 "인간이 문명을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학생은 토기나 낚시 바늘, 혹은 사냥 도구나 종교 유물 같은 것이 아닐가 생각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예상밖으로 '부러졌다가 나은 넓다리뼈(대퇴골)'이었다.

넓다리뼈는 인간의 몸 속에 있는 200여 개 뼈 중 가장 큰 뼈로 고관절과 무릎을 연결하여 걷고 뛰는 데 필수적인 뼈다. 이 넓다리 뼈가 부러지면 대부분의 동물은 조만간 죽을 수 밖에 없다. 움직이지 못하니 냇물에 가서 물을 마실 수도 없고,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치유된 넓다리뼈는 뼈가 부러졌어도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러진 넓다리 뼈가 다시 붙어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데는 6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그 동안 다른 인간으로 부터 도움을 받아 먹고 살면서 부러진 다리를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이게 바로 문명의 증거라는 것이다.

마가렛 미드가 다친 사람을 돌보고 치유하는 돌봄이 인간 문명의 첫 번째 증거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할머니와 이모 혹은 고모로 구성된 소수의 출산공동체가 인간의 첫번째 공동체라고 말한다. 뼈가 부러진 사람을 돌보든, 갖 태어난 아이와 산모를 돌보든 동료 인간을 돌보는 것이 인간 문명의 출발이며 동시에 인간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첫번째 활동임이 분명하다.



국가 소멸이나 인구 소멸이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인의 시간 지평선 위로 떠올라 한낮으로 향하고 있다. 소멸이 나타나는 근본 원인은 결국 출생과 돌봄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태어나는 아이 울음소리가 그쳤고, 어렵고 힘든 사람에 대한 돌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와 산모에 대한 것이든, 다양한 형태의 장애를 가진 이웃에 대한 것이든, 죽음을 앞둔 노인을 돌보는 것이든,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에 대한 지원이든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 돌봄이 부족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돌봄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요소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돌봄은 주로 정부의 지원이나 돈을 가지 해결하는 시장방식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대규모 관료제적 방식은 근본적으로 돌봄이 가지는 '소규모 공동체'적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아이가 태어나는 데 조산원이나 산부인과가 필요한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이를 잘 키워줄 수 있는 가족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모는 출산의 고통에서 회복하고, 아기는 먹고 자라는 데 필요한 심리적 사회적 환경이 제공되는 것이 필요하다.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이 2006년 이후 총 400조 원가량 투입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계출산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저출산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잘 못 됐기 때문이다. 마가렛 미드나 로빈 던바의 주장처럼 출생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돌봄공동체 출산공동체의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출산공동체와 태어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는 돌봄공동체가 튼튼하고 지속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여성은 아이를 갖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성이 아이를 갖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선택을 했을 때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서 잘 자랄수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출생이 이뤄지고 출생율은 회복될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으로는 이렇게 출생과 돌봄 공동체가 나타난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그로 인한 결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2,3세대가 지나야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당분간 저출생고령화의 시기를 겪을 것이며, 그 시기에 태어난 다음 세대에 의해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저출생고령화를 해결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었다. 오히려 진행 중인 저출생고령화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돌봄인 것 같다.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