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작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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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작은 공원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 승인 2024-07-24 17:16
  • 신문게재 2024-07-25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조부연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필자가 아침저녁으로 다니는 길목에는 작은 공원이 세 개나 된다. 이른 아침, 작업실에 출근하기 위해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면 바로 첫 번째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며 동네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큰 걸음으로 오십을 세면 ○○어린이 공원이 보인다. 이 공원은 원래 어린이 놀이터였다. 꽤 오래전에 놀이터의 가장자리에 경로당이 들어서고 어른을 위한 운동기구 두어 개가 설치되더니 놀이터라는 이름 대신 어린이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린이공원 바로 옆에 필자의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에서 큰 걸음으로 삼십을 세면 이름 없는 공원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왕복 6차선 도로로 나설 수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동네가 바뀐다. 점심때가 되면 쉼터에 가까운 이름 없는 공원을 지나 도로를 건너 맛집을 찾아다닌다. 새로 생긴 일본식 돈가스집도 있고 수십 년째 다니는 올갱이 해장국집도 있다. 길 건너 남의 동네에만 맛집이 있는지 모르겠다. 해 떨어지면 다시 공원을 지나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매일매일 산다. 필자와 비슷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주 많다.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학교 가는 아이들이 작은 공원을 지나다닌다.

그런데 이 작은 공원, 쉼터, 놀이터가 다른 얼굴로 계속바뀐다. 첫 번째 쉼터 작은 공원에 동네노인들이 아침부터 하나 둘 모여든다. 해가 뜨거워지면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 키가 훌쩍자란 조경수 덕분에 빈틈없이 그늘져있다. 해가 기울면 노인들은 집으로 향한다. 주변 식당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열고 취객이 하나 둘 공원에 모여든다. 편의점에서 맥주 두어 캔과 간단한 안주를 마련해 벤치에서 2차, 3차를 한다. 아침일찍 이곳을 지나면 지난밤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수 있다. 벤치마다 맥주캔과 술병들이 굴러다니고 앉은 자리에 담배꽁초와 가래침이 뒤섞여 있다.

다른 얼굴도 있다. 어린이 공원도 마찬가지인데, 동네의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재활용품을 담은 비닐봉지며 포장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게다가 대형 쓰레기까지 공원에 버린다. 고물 냉장고, 고장 난 TV, 소파 등등. 모두 자기 집 앞에 버려야 한다. 하지만 자기 집 앞에 쓰레기봉투나 재활용품이 쌓여있는 걸 견디기 힘들어한다. 작업실의 유리창 너머로 오늘도 동네 아저씨가 쓰레기봉투를 슬그머니 어린이 공원 곁에 두고 간다. 잘못인 줄은 아는 모양이다. 누가 볼까봐 주변을 살피는게 역력하다.



지금의 작업실에 처음 와서 이 광경이 너무나 못마땅했다. 작업실 앞에 종량제 쓰레기봉투며, 재활용품을 내놓았다. 건물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무랐다. 집 앞의 쓰레기를 공원 앞으로 옮기라고 했다. 행인이 쓰레기를 던져놓고 간단다. 집앞이 더러워진다며 어린이공원 앞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그때부터 작업실에서 나오는 쓰레기며 재활용품을 차로 실어 나른다. 그리고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처리한다. 죽어도 어린이공원 앞에 버리기는 싫다. 이름 없는 작은 공원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대형 교회 앞이고 주변이 뻥 뚫려 있어 보는 눈들이 아주 많다.

동네의 작은 공원의 본디 얼굴은 이렇다. 그늘 아래 벤치에서 노인들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행인이 잠시 쉬어 간다. 여기저기 킁킁대며 오줌을 갈기는 애완견 때문에 눈치 보는 동네 사람도 보이고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동네 사람도 적지않다. 작업실 앞 어린이 공원에 아이들이 놀러 오는 때는 하루 중에 한두 시간도 안된다.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는 날도 허다하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면 일부러 오디오를 끈다. 어떤 음악보다 듣기 좋은 소리가 아이들 웃음소리다. 그런데 점점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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