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
어제가 없이 오늘이 있을 수 없듯 현재를 만들어 온 과거를 되짚어 봄으로써 문제의 열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에서다. 다시 말해 이 사회를 변화시킬 바람직한 인간에 관한 해석은 역사와 전통 속에 쌓아져 있다고 믿는다. 역사와 전통은 미래의 인간을 키울 수 있는 비옥한 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유교문화의 유입으로 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이해가 조성되었고, 고려 말기인 충렬왕 때 안향과 백이정에 의해 원나라에서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학풍, 도학이 형성되었다. 도학이 정립되면서 선비의 자각도 심화되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유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선비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립하였다. 고려 말 충의를 지킨 정몽주를 숭상하고, 절의를 굽히지 않은 길재의 학풍을 이으면서 선비정신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선비는 사회의 지도적 계층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에 따라 선비의 생활도 매우 엄격한 틀에 의해 정형화되었다. 선비는 관직에 나아가거나 자연에 은둔해 살더라도 유학의 도를 강론하고 실천함은 물론 그것을 통해 일반 대중들을 교화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안게 된 것이다. 동방의 주자라 불리는 퇴계 이황은 선비를 가리켜 '세력과 지위에 굽히지 않는 존재'라 하였다. 또한 그는 "세속적 권세를 쫓는 무리"들이 부유함으로 한다면 나는 인(仁)으로 하며, 저들이 벼슬로 한다면 나는 의(義)로써 한다"라고 선비의 할 바를 일러주었다. 무릇 선비정신이란 이기적이지 않고 탐욕에 현혹되지 않으며, 도와 예를 바탕으로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그 강인성은 변하지 않고 굽히지 않는 의리로 표현된다. 조광조의 말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단체)의 발전을 위해 도모하며, 일에 대해서는 과감히 실행하고 어려움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바른 선비의 마음가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인을, 근대의 영국에선 신사를, 고대의 중국인은 군자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인간상으로 내세웠듯이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선비를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으로 일컬었다. 공자와 맹자를 존중하며 사서오경을 공부하고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왕도(王道)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던 선비들의 삶과 이상은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쓸모없는 것은 분명 아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삶의 방식이 바뀌어 가지만 현재의 한국인을 만든 문화적 기반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심장 역할을 했듯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오늘날의 선비들을 중심으로 변해간다.
오늘날의 선비는 전문 지식과 도덕적 양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지성인으로서 사회적 공론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리사욕을 없애고 자신을 봉사할 수 있는 인간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인간의 가치관은 변해 간다. 이런 측면에서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한국의 선비 정신을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도리를 배우고 익히면서 실천하는 선비 정신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줄 것이다. 선비라는 역사적 문화적 기반 속에서 한국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그 연속적 지향점을 가질 수 있다. 선비 정신은 보편적 인간상을 지니면서도 시대에 대한 책임의식으로 변화를 향한 실천을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선비 정신은 합리성과 실질보다는 대의명분을 강조함으로 인해 폐단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선비라는 개념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비 정신은 우리 사회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역사를 의롭게 이끌어 가려는 지성과 정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사회에 어른다운 어른이 조직이면 조직, 가정이면 가정 등의 위치에서 바로 제 역할을 했을 때 그 사회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바른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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