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싫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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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싫존주의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 승인 2024-07-23 14:42
  • 신문게재 2024-07-24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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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최초의 나라다. 1964년 설립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1년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68차 회의를 개최하고, 한국을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공식 변경하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경제성장의 핵심 주체는 베이비붐 세대(1950~60년생)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조직 내 상하관계 속에서 조직의 목표를 우선시하며, 나보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강하다. 집단 공동체적 특징이 조직문화와 연계된 측면이 큰 세대다.

우리는 태어나서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관계 형성을 시작한다.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집단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관계를 맺으며, 공동체적 특징을 보였다.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1997년 외환위기 시절의 금 모으기 운동, 2002년 월드컵은 우리의 집단공동체성이 잘 발현된 대표사례다. 역사적으로 향약이나 두레, 계도 마찬가지다. 계 문화는 아직도 여행계, 친목계, 낙찰계 등으로 성행하고 있다. 한 사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끈끈함이 베여 있는 집단공동체성을 갖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가 도래되면서 이들의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1980~90년생)가 사회에 주류가 되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극심한 취업난을 경험한 밀레니얼 세대는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요시한다. 삶의 여유를 누리지 못한 세대보다 삶의 행복에 대한 의지가 크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보다 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인간의 수명이 증가하면서 평생직장이라 개념은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평생 이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밀레니얼 세대는 평생직장이 아닌 급변하는 시대에 맞는 직업을 찾는다.

2000년대 생이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면서, 사회란 한 지붕 아래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X세대, 밀레니얼 세대, Z세대, 알파세대라는 다섯 세대가 함께 살아가니 서로 배려하고 양보해야 할 것들도 참 많아졌다. 아날로그적 방식에 익숙한 세대, 디지털 방식에 친숙한 세대가 공존한다. 전통과 관례에 의존했던 세대, 재미와 간편함을 추구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세대가 공존한다. 여러 세대가 공존하면서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상호 존중하는 문화는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최근 10만 명 이상 가입한 커뮤니티가 화제였다. '5275모임'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건강한 채소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우리는 그동안 "음식에서 오이를 빼주세요"라는 사람들을 까다롭고 편식하는 사람으로 프레임을 씌어 불호를 교정하려 했다. 하지만, 이 커뮤니티에서는 오이를 싫어하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아닌 존중 받고자 하는 '싫존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코로나와 각종 재난을 경험 한 청춘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새로운 가치의 등장은 집단 가치에 익숙한 세대를 어렵게 한다. 어렵게 상급자가 되었지만,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는 조직을 관리하기 어렵다. 회식도 쉽지 않다. 설사 회식자리에서라도 노래를 시키거나 건배사를 시키면 갑질이 될 수 있다. 술잔을 돌리는 것은 이제 상상도 못할 일이다. '너 늙어봤니, 나 젊어봤다'라는 말이 꼰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제는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고 싫어하는 것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시대다. 하지만 싫존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때 성립된다. 자기의 싫음을 표현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 피해를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싫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싫음은 나 중심적이지만, 상대방의 싫음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사회관계나 정치관계에서도 다른 사람에 피해를 주지 않는 싫존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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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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