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바름 기자 |
배수 작업이 끝난 마을을 다음날 다시 방문하니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은 처참했다. 하천물에 떠밀려온 토사로 마을은 온통 뻘밭으로 변해있었다. 도로와 주택마다 끈적끈적한 진흙이 쌓여 한발 한발 내딛는 게 힘들 정도. 주택 내부는 더 심했는데, 흘러들어온 토사물이 여전히 빠지지 않은 상태였고 전자제품 등 가재도구들은 쓰러지고 진흙 속에 뒤엉켜 있었다.
빗물에 모든 것이 떠내려갔음에도 정뱅이마을 주민들은 따스함을 잃지 않았다. 피해 현황을 묻는 것조차 말문이 턱 막히는 상황. 짜증을 낼 것이란 내 예상과 달리 주민들은 "더운 날씨에 일하느라 고생한다"며 오히려 격려해줬다. 뻘밭을 걸어 다녀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은 것을 보고는 마당에 있던 호스로 물을 틀어 신발을 닦을 수 있게 배려해준 분도 있었다. 주거공간에 차량까지 침수돼 피해가 심했던 분이다. 고지대에 있어 다행히 침수 피해가 없었던 한 노부부는 집에 있던 음료수들을 잔뜩 갖고 나와 주민들과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의미로 음료를 하나씩 나눠줬다.
이때 전날 도안동의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현장에 갔던 후배 기자의 얘기가 생각났다. 인근에 있던 하천 범람으로 2개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긴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입주민이 후배에게 다가와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피해가 더 심한데, 왜 우리 아파트로 취재를 오냐. 옆 아파트를 가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물론 차량이 주차된 지하 주차장 전체가 침수돼 슬프고, 화가 날법한 상황이다. 이해는 하지만 우리 아파트 말고, 옆 아파트를 취재하라며 소리친 점이 그리 곱게 보이진 않았다.
지난 10일 내린 폭우로, 6일이 지난 지금도 서구의 수해 지역 43가구, 81명이 대피소에서 지내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이번에 극심한 비 피해를 입은 충남 논산과 서천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시설복구비 일부를 국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서구청은 피해 조사를 조속히 끝낸 후 신청을 할 예정이다. 정뱅이마을에 사는 어르신 4~5가구는 흙집에 거주해 붕괴 위험으로 집을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서구의 주민들이 같은 아픔을 또 겪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에서 힘써주길 바란다.
/정바름 사회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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