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에 방문하여 찍는 증명사진 역시, AI를 활용하여 제작할 수 있다. 본인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올린 뒤 이를 합성하는 방식인데, 과도한 보정 등의 이유로 실제 모습과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과거에는 증명사진을 찍을 카메라와 AI 기술이 없으니, 이를 대체하는 것이 바로 초상화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현재와 같이 보정(일명 뽀샵)이 들어갔을까?
『승정원일기』숙종 14년(1688) 3월 7일 기록에 따르면 "선유들이 이른바 '털끝 하나 머리털 한 가닥,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이는 곧 다른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과연 바꿀 수 없는 견해이다"라고 초상화 제작의 원칙이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그림 속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 그 정신까지 담아내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사상이 강해지면서 극사실주의 초상화가 발현된다. 초상화를 그렸던 이들은 조선시대 예조 산하 관청인 도화서에서 그림 그리는 일에 종사한 화원[직업화가]이다.
임금의 초상화를 뜻하는 어진(御眞)은 모든 신하들이 참여하여 공을 들였다. 어진은 단순히 왕의 얼굴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뿐만 아니라 왕실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조어진>은 조선의 군주로서의 근엄함과 위엄이 잘 담긴 초상화다.(그림 1). 그러나 태조의 오른쪽 눈썹 위 이마에 혹이 뽀샵 없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어진에 그려진 혹처럼 조선시대 초상화에는 솔직담백한 선조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조선시대에 천연두가 창궐한 사실은 문헌뿐만 아니라 초상화로도 관찰이 가능하다. 얼굴 전체를 뒤덮은 천연두 자국을 비롯하여 백반증, 다모증 그리고 간질환이 악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흑색황달' 등 다양하다.
(그림 1) <태조어진>, 1872년, 전주 경기전 소장 |
(그림 2). 오명항 초상화 천연두 자국과 흑색 황달(오른쪽 사진) |
(그림 3) 성창명 초상 백반증 |
최정민/평론가
최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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