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조선시대 선조들도 '뽀샵'을 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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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조선시대 선조들도 '뽀샵'을 원했을까?

최정민/평론가

  • 승인 2024-07-16 17:2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인공지능(AI)는 현재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16년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있던 해만 해도 AI는 관심을 끌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챗GPT의 등장을 시작으로 수많은 생성형 AI가 전파된다. 현재는 누구나 AI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사진관에 방문하여 찍는 증명사진 역시, AI를 활용하여 제작할 수 있다. 본인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올린 뒤 이를 합성하는 방식인데, 과도한 보정 등의 이유로 실제 모습과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과거에는 증명사진을 찍을 카메라와 AI 기술이 없으니, 이를 대체하는 것이 바로 초상화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현재와 같이 보정(일명 뽀샵)이 들어갔을까?

『승정원일기』숙종 14년(1688) 3월 7일 기록에 따르면 "선유들이 이른바 '털끝 하나 머리털 한 가닥,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이는 곧 다른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과연 바꿀 수 없는 견해이다"라고 초상화 제작의 원칙이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그림 속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 그 정신까지 담아내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사상이 강해지면서 극사실주의 초상화가 발현된다. 초상화를 그렸던 이들은 조선시대 예조 산하 관청인 도화서에서 그림 그리는 일에 종사한 화원[직업화가]이다.

임금의 초상화를 뜻하는 어진(御眞)은 모든 신하들이 참여하여 공을 들였다. 어진은 단순히 왕의 얼굴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뿐만 아니라 왕실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조어진>은 조선의 군주로서의 근엄함과 위엄이 잘 담긴 초상화다.(그림 1). 그러나 태조의 오른쪽 눈썹 위 이마에 혹이 뽀샵 없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어진에 그려진 혹처럼 조선시대 초상화에는 솔직담백한 선조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조선시대에 천연두가 창궐한 사실은 문헌뿐만 아니라 초상화로도 관찰이 가능하다. 얼굴 전체를 뒤덮은 천연두 자국을 비롯하여 백반증, 다모증 그리고 간질환이 악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흑색황달' 등 다양하다.



1태조
(그림 1) <태조어진>, 1872년, 전주 경기전 소장
오명항(吳命恒, 1673~1728)의 초상화 두 점은 동일 인물이지만 시기별 얼굴 변화가 드라마틱하다. (그림 2). 두 초상화 모두 천연두 자국이 남겨져 있다. 우측의 오명항 초상화는 화사한 분홍빛 옷과 대비되는 얼굴 색이 눈에 띤다. 간경화 말기임을 웅변해주는 흑색황달은 당시 오명항의 인생 말년이 어떠했는지 가늠되는 작품이다.

2
(그림 2). 오명항 초상화 천연두 자국과 흑색 황달(오른쪽 사진)
송창명(宋昌明, 1689~1769)의 초상화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백반증이 그려진 작품이다. (그림 3). 백반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도 다 있었다. 다만 조선을 제외한 고위층 초상화의 경우에는 본인의 콤플렉스 부분을 보정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마리 앙투아네트(프랑스 왕 루이16세의 왕비)는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주걱턱과 안구돌출증 등의 유전병을 지녔다. 그러나 그녀의 초상화는 그러한 유전병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외모로 그려져 있다.

3
(그림 3) 성창명 초상 백반증
조선에는 없고 서양 초상화에는 있는 뽀샵은 공적이냐 사적이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임금이 국가 공신에게 선물로 하사하거나 제의용, 기념용으로 제작되었다. 반면 서양의 경우 우리가 사진관에 가서 돈을 주고 찍은 것과 마찬가지로 외주를 맡겼다. 만에 하나 조선시대 선조들이 현대에 살고 있다면 우리처럼 자신의 콤플렉스 부분을 뽀샵하지 않았을까?

최정민/평론가

최정민 평론가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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