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기계의 시대, 일의 의미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기계의 시대, 일의 의미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승인 2024-07-14 11:26
  • 수정 2024-11-13 17:34
  • 신문게재 2024-07-15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청소도우미 앱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도움을 받고 있는 나는, 최근에 1년간 성실하게 청소를 해주던 도우미가 그만두면서 새로운 도우미를 맞이하게 됐다. 그러나 새로운 도우미들은 매번 한 번만 오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들은 정작 해야 할 청소는 불성실하게 하고, 본질적이지 않은 부수적인 일인 정리정돈에 시간을 할애했다. 욕실 청소는 손도 대지 않은 대신 빨래를 곱게 개어놓고, 바닥 진공청소기는 돌리지 않고 대신 주방 식기류의 자리 재배치를 멋지게 해놓는 식이었다. 그러고는 일이 많다고 느꼈는지 바로 다음 주부터는 안 하겠다고 해서 계속 새로운 사람이 오게 되지만, 몇 주씩이나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 현상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것 같았다. 서비스받는 사람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 청소전문가를 불렀는데 정리전문가가 온 셈이다. 왜 정리전문가 자격증 따서 그런 일을 하러 가지 않는 걸까? 청소업체는 그런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겠지만, 해가 갈수록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고 관리도 어려워질 것 같다.

하지만 빨래는 세탁기, 설거지는 식기세척기, 바닥청소는 로봇청소기에 맡기면 집에 물건을 좀 없애고 내가 조금 더 움직인다는 전제하에 굳이 인간 청소도우미를 부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점점 더 일할 사람이 없어지고, 일하기 싫어하며, 일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결국 대안은 기계밖에 없을 것이다. 기계는 서비스받는 사람 중심으로 해줄 수 있으니까.

지적인 일을 해주는 AI는 이미 눈부신 발달을 하고 있지만, 육체노동을 대신해주는 로봇은 훨씬 고난도의 기술과 작업환경의 완전한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인류 최대의 발명이 범용 가사도우미 로봇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이 개발되고 시판되면 처음에는 어마어마하게 비싸겠지만, 나중에는 모든 가정에 한 대씩 보급되고 취약계층에게는 국가에서 한 대씩 지급해주는 사회가 될 것 같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때 인기 있었던 공상과학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되던 사회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흔하게 접하는 배달 일이나 카페 아르바이트 등도 모두 머지않은 장래에 기계로 대체 가능한 일들이다. 사람은 힘들다고 일을 대충 하고 금방 그만두며 높은 임금까지 요구하지만, 기계는 하라는 대로만 하고 고장 나기 전까지 그만두지 않으며 초기 구입비 외에는 월급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하기 싫어하는 직원들과 일 시킬 사람 구하기 힘든 사장님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기 싫은 일을 인류 대대로 참 많이도 해왔다. 고생은 이제 그만 해도 될 때가 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는 하기 싫은 일에서 해방될 수 있을 만큼 능력치를 쌓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단순히 일하기 싫은 마음만 가진 사람은 기계의 생산성이 만들어내는 부를 국가로부터 나눠 받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답게, 또 의미 있게 살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면 사회에 도움이 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고민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지만, 그냥 기계의 서비스를 받아가며 연명만 하는 삶을 누구나가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세상에서는, 하기 싫은 일이지만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핑계 뒤편으로 도망칠 수도 없고, 일하기 싫다는 응석을 부릴 수도 없다(언제 누가 일하라 했나?!). 이제야말로 '일'이 우리 존재의 발전과 고양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일 앞에서 자기의 민낯이 다 드러나 버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때는 진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