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여기서, '공인중개사가 조사하고 확인해 설명할 의무는 없으나 중개의뢰인이 계약을 맺을지 결정하는데 중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최근의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살펴보자. 대판 2022다212594 판결. 이 사건은 2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엇갈린 첨예한 사건이었다. 甲이 임차한 다가구주택의 임대차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임대인이 알려 준 선순위 보증금 합계액을 그대로 기재하면서 임대인이 관련 자료제공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을 적었다. 즉 중개사는 위 설명서에 임대인이 각 호실별 보증금은 함구한 채 그 합계라고 알려 준 금액을 그대로 적었다. 그런데 위 선순위 보증금의 합계액이라는 게 사실 기존 임차인들의 실제 보증금 합계액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어서 甲이 위 다가구주택의 경매절차에서 보증금 일부를 회수하지 못하게 되었다.
먼저 중개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중개사로서는 임대인이 관련 자료제공을 거부해 매물의 융자 실상을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임대인의 자료제공 거부 사실을 계약서에 기재하면서 이 정도라면 자신의 도리는 다했고 위험은 임차인에게 충분히 고지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렇더라도 중개사에게 중개계약상 의무 위반을 인정할 수 있을까. 중개사는 자기가 조사·확인해 설명할 의무가 없는 사항이라도 의뢰인이 계약을 맺을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이라면 그에 관해 그릇된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중개사가 그 정보가 진실인 것처럼 그대로 전달하여 의뢰인이 이를 믿고 계약을 체결했다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성실하게 중개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개사는 보통 지역에 대한 물리적, 장소적 기반을 근거로 활동하게 되므로 적어도 해당 다가구주택의 규모와 전체 세대수, 인근 유사 부동산의 보증금 시세에 비추어 임대인이 구두로 알려 준 금액이 실제와 차이가 클 수 있고 상당수의 소액임차인도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위 사건에서 임대인이 제시했다는 내용이 불충분하거나 부정확할 수 있음은 알리지 않았으므로 결국 甲에게 그릇된 정보를 전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부작위에 의해 의무위반을 저지른 것이다.
이번엔 임차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특히 다가구주택에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한다면, 먼저 대항력을 취득한 임차인의 보증금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또는 소액임차인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성을 따져보고 계약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이다. 기존 임차인들의 실제 보증금 합계액이 임대인이 중개사를 통해 알려 준 것보다 훨씬 많고 그중 상당수의 임차인이 소액임차인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임차인은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뒤집으며 중개사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임차인이 공인중개사를 통하는 것은 단순히 매물 물색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매물에 대한 권리분석, 즉 융자 등의 금융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최소한의 사실관계와 주의사항을 고지받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상당한 액수의 중개수수료를 지불할 동기를 찾기가 어렵다. 중개사로서도, 설사 임대인의 태도에 따른 애로사항이 있더라도, 임차인은 물론이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사항들에 대한 설명의무는 진다고 생각하고 중개하는 게 안전하다. 중개는 법적으로 사실행위에 불과하므로 중개사의 책임을 만연히 확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경계선에 서 있는 위와 같은 사안에 있어서는 위 판결처럼 "과연 임차인이 이런 사정을 듣고도 계약을 체결할까"라는 상식적인 기준을 생각하며 중개하여야 할 것이다.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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