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38- 부여 홍산의 ‘백순대’ 맛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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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38- 부여 홍산의 ‘백순대’ 맛을 아시나요?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4-07-08 17:18
  • 신문게재 2024-07-09 8면
  • 한은비 기자한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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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홍산할매순대 모습. (사진=김영복 연구가)
이번 맛있는 여행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천년고도 부여를 향해 떠난다. 특히 지형이 나는 기러기처럼 생겼다는 비홍산(飛鴻山)에서 유래한 홍산면(鴻山面)의 전통시장을 향했다.

면(面)단위 전통시장 치고는 규모가 있고, 잘 정돈되어 있다. 옛날에는 장날이면 홍산장에 우전(소시장)·나무전이 서고, 부여는 물론 보령·서천에서 온달구지들이 "나라비(줄) 서던"곳이였다고 한다. 2일 7일인 홍산 장날 중에서 12일과 27일에 무료 식당이 두 번 열린다고 한다. 무료 식당은 2021년 11월 시장 안 식당 '우리사이' 주인 김미영씨가 상인회와 함께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가 찾은 날은 홍산 장(場)이 서지 않는 무싯날[無市日]이라 그런지 장마당이 한적하다. 홍산(鴻山)은 아직도 비홍산(飛鴻山)자락에 홍산현(鴻山縣) 관아(官衙)가 남아 있을 정도로 역사적인 도시이며, 대동미를 수납하는 홍산창(鴻山倉)과 보부상(褓負商)이 드나들던 요충지였다. 저산팔읍상무사(苧産八邑商務社)는 조선 시대 모시의 주산지인 남포·부여·홍산·임천·한산·비인·서천·정산 등 8개 군·현의 보부상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보부상 조직으로, 보상(褓商) 조직인 저산팔읍상무우사(苧産八邑商務右社)와 부상(負商) 조직인 저산팔읍상무좌사(苧産八邑商務左社)로 구분되는데, 우사(右社)는 임천, 좌사(左社)는 홍산 보부상으로 생선, 소금, 수철, 토기, 목물 등의 물품을 취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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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순대 한뎃부엌 모습. (사진=김영복 연구가)
저산팔읍상무사는 20세기 초반까지는 권역 내의 오일장을 무대로 상품의 거래와 유통, 장시의 발전 등을 위한 상인 단체의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이후로는 저산팔읍상무사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친목 단체로 유지되다가 1980년대 초반 좌사와 우사 모두 해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홍산전통시장은 면단위 장(場)치고는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인다. 무싯날 시장은 사람이 없으니 대부분 손님이 없으니 식당 등은 문을 여는 둥 마는 둥 사람이 전혀 없다.다만 시장 한켠에 색 바랜 '할매순대'라는 간판을 건 식당에는 그래도 손님이 앉아 이 집에서 유명한 백순대 등을 안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솥에서 건져 낸 박순대.
솥에서 건져 낸 박순대. (사진=김영복 연구가)
식당 밖에는 순대를 삶는 솥안에 고음국이 끓고 있었고, 종업원인 듯한 젊은 여인은 깍두기 무를 썰고 있었다. 홍산할매순대(대표 김정희 충남 부여군 홍산면 홍산시장로 45-14 전화 041-836-4283)로 불리는 이 집은 3대에 걸쳐 90여 년 동안 이 장터에서 순대 집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함께한 일행은 이번 맛있는 여행이 전통시장의 순대집이라니 특유의 냄새가 나면 어쩌지? 하는 염려를 하며 내려갔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순대국과 모듬순대를 시켰는데, 최근에 먹어 본 순대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순대였다. 백순대와 함께 나오는 양념순대, 곱창볶음, 머릿고기가 접시에 담아 나왔는데, 야들야들하니 부드럽고 깔끔한 백순대는 두툼하면서 폭신한 식감과 씹으면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담백한 고기와 두부, 채소까지 입안이 호사스럽다. 더 중요한 것은 순대 특유의 잡 내가 전혀 안 나고 입안이 개운하며 구수한 맛이 난다. 양념순대 역시 이게 순대인가 할 정도로 감칠맛이 난다. 특히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signature menu)인 하얀 백순대는 백미(白眉)중에 백미였다.

빨간 선지를 대나무 잎을 삶은 물에 중탕하며 걸러 하얗게 하는 백순대의 비결은 이 집만의 특별한 노하우였다. 선지의 잡냄새를 대나무 잎으로 제거하며 중탕을 하면 선지 입자가 분리된다고 한다. 한편 순대에 넣는 돼지고기는 호박잎 밥으로 숙성시키는데, 호박잎밥을 덮어 24시간 숙성시킨 돼지고기를 사골육수에 삶은 후 다져 두부와 채소를 넣어 순대를 만든다. 이렇게 만드는 백순대 비법은 모두 다 시할머니로부터 시어머니를 거쳐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식당 밖 한데 부엌에 걸린 솥에 사골육수가 끓고 있었다. 이 집 주인은 손님이 오면 사골육수 안에 있는 백순대를 육수거름망으로 건져 낸다. 촉촉한 하얀 백순대가 마치 폴란드의 킬바사(Kielbasa) 중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강한 화이트 소세지와 같다.

할매순대 김정희 대표.
할매순대 김정희 대표. (샤진=김영복 연구가)
김정희 대표는 안동사람이다. 안동처녀가 충남 부여 홍산에 시집와 홍산 장에서 시할머니 때 시작한 백순대의 비법을 전수 받아 남편 이상필과 함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집은 연륜만큼 지역에서는 꽤 알려진 맛 집으로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의 대화 내용이 대부분 동네 사랑방에서나 들을 법한 시골 이웃들의 안부 성 이바구들이다. 이 집은 순대냄새가 안 나고 오히려 정이 철철 넘치는 사람냄새가 나는 집이다.

충남의 순대하면 전국적으로 알려 진 병천 순대와 세종시 대평시장 근방의 충남순대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부여 홍산의 백순대가 비록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강력 추천하는 맛 집이다. 우리는 순대를 언제부터 먹었을까? 원래 순대는 고대(古代)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했던 음식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우리 토종음식일 것 같지만 사실 원조는 북방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 순대가 있었다. 역사적 근원을 따라가면 순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달한 참 오래된 음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은 동물의 창자에 고기와 야채, 양념 그리고 그 동물의 혈액을 함께 넣어서 먹거나 보관하는 법을 알았다. 순대에 대한 동양의 첫 기록은 기원전 7세기 이전『시경(詩經)』에 등장하는데, '손님접대를 위해 여러 음식을 준비하고 특히 추천 요리로 동물을 잡으면서 채취한 곱창요리와 순대를 준비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순대 요리법은 6세기 때 중국 북위(北魏)의 가사협(賈思?)이 지은 농서(農書)『제민요술(齊民要術)』에 양반장도(羊盤腸搗)라는 순대요리가 기록되어 있다.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양의 창자를 잘라 깨끗이 씻고, 양의 피와 양고기 여기에 잘게 썬 파와 소금, 마늘, 후추 등을 섞어 양의 창자에 채운 후 요리를 해서 먹으면 맛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나라 초기 몽고풍의 가정요리 백서인『거가필용(居家必用)』에는 순대를 관장(灌腸)이라 하였다. 순대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창자를 씻어내기 때문에 관장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 같다. 순대는 원래 순대 갹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였다. 이 갹은 북송 때 한자의 발음을 정리한 음운서인 『집운(集韻)』에 고기를 잘라 창자를 채운 후 ... 구운 것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먹는 순대의 원형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순대가 유럽 쪽에 전파된 계기는 징키스칸의 몽고족이 유럽 대륙 정복 시 전투음식으로 활용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할매순대 모듬순대.
할매순대 모듬순대.(사진=김영복 연구가)
순대는 보관과 휴대가 용이하도록 돼지의 창자에 쌀과 야채를 혼합해 말리거나 냉동시켜 기동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세계를 정복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데 부터 유래된 음식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게 한다. 이때 유럽까지 정복한 몽골족에 의해 이러한 음식 문화가 전래되어 동양에서는 순대로, 서양에서는 소시지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순대가 청나라 황실의 기록에 따르면 제사음식에도 사용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만주족 황실의 제례의식을 기록한『만주제신제천전례(滿洲祭神祭天典禮)』에 따르면 제사를 지낸 후 돼지창자에 선지(피)를 채워 혈장(血腸)이라는 것을 만들어 음복을 하였다.

한국에서 순대라는 19세기 말엽 조선 말기의 요리책으로 지은이는 전해지지 않지만 1919년 심환진(沈晥鎭)이 상주 군수로 부임한 당시, 상주의 반가에서 한 요리책을 베껴둔 필사본이 그의 며느리인 홍정(洪貞) 여사에게 전해진『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 등장한다.

이 책에는 돼지고기를 이용한 순대가 처음 나오는데, 이것이 오늘 날 우리가 먹는 순대의 완성형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광범위한 조리법을 비교적 잘 분류, 정리된 것으로 조선말기 여러가지 식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편 1809년 (순조9년) 여성실학자이자 서유구의 형수인 빙허각 이씨가 아녀자를 위해 엮은 일종의 여성생활백과『규합총서(閨閤叢書)』나 1766년 왕실 의관이었던 유중림(柳重臨, 1705∼1771년)이 쓴『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소 창자를 깨끗이 씻어 쇠고기와 꿩, 닭고기를 두드려 온갖 양념과 기름장으로 간을 맞추어 창자속에 가득히 넣는다.

그리고 실로 두 끝을 봉한 다음 솥에 먼저 물을 붓고 대나무를 가로지르고 그 위에 얹는다. 물에 잠기게 말고 뚜껑을 덮어 은은한 불로 고아 꽤 익은 후 꺼내어 식거든 말굽 모양으로 저며 초장에 써라. '고 기록되어있다. 비록 순대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사료를 통해 순대는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던 전통 음식임을 알 수 있다.홍산할매순대집에는 백순대와 순대국밥 딱 두 가지 뿐이다. 대부분 순대국밥집에서는 순대만 넣는데, 순대국밥에는 안에 내장, 선지, 백순대가 들어있는데, 쫄깃한 것이 맛있고, 국물도 시원하고 맛있다.

옆에 후추랑 산초가루가 있어 곁들여 먹으니 순대국에 진한 향미가 난다. 순대국은 보통 뼈를 공수해와 핏물 빼고 애벌 삶아 버리고 24시간을 고아 하얀 국물을 뽑아낸다. 바로 여기에 각 전문점마다의 비법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국물을 삶을 때 돼지머리도 넣고 삶아 머릿고기를 순댓국에 넣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집에는 백순대가 들어 가 있다.

할매순대 순대국.
할매순대 순대국. (사진=김영복 연구가)
보통 순대집이나 순대국을 하는 전문점에는 돼지 도축 후 내장 판매가 시작됨과 동시에 일정한 양을 배달 받아 바로 삶기 때문에 신선도에서 오는 그 맛을 가정에서 따라 잡기가 힘든다. 홍산할매순대집 같은 진짜 맛집이 사라지고 최근에는 이런 과정들이 힘들고 재료비와 인건비 인상으로 순대국 전문점도 체인점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맛 기행을 하면서 이렇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하는 순대나 순대국밥 집을 만나는 것은 횡재가 아닐 수 없다. 홍산은 맛집 투어와 함께 둘러 볼만한 문화유적들이 많이 보전되어 있다. 홍산현 관아와 홍산 객사, 홍산 향교, 청일사, 만년교, 홍산 태봉산성, 홍양리 오층석탑 등 많은 문화유적들이 홍산면의 과거가 예사롭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첫째, 홍산현 관아의 정문인 집홍루, 이곳을 통해 들어가면 관아의 핵심 건물인 동헌을 비롯해 여러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 집홍루의 2층에 오르면 홍산면이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오고, 뒤쪽으로는 누각 사이로 관아의 건물들이 멋지게 보이기 때문에 관아를 둘러볼 때는 먼저 이곳 누각에 오르기를 권한다.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핵심 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일을 하던 곳이다. 건물의 보존 상태가 좋아서 조선 시대 동헌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둘째, 홍산현 관아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홍산 객사가 자리하고 있다. 객사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사신이 머물던 관아의 부속 건물이자 숙소이며,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되어 동헌과 함께 홍산현 관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이외에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공자 등 옛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기르도록 나라에서 세운 지방 교육 기관이었던 향교나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을 기리기 위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세운 사당인 청일사 등이 홍산면 관내에 있어 식사 후 둘러 볼만한 곳들이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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