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원장수녀님이 정기 인사 발령으로 타 지역으로 이동하시게 된 것이었다. 신뢰 받는 성직자로 자리매김하신 분이라 떠나시는 날은 임지까지 모시겠다는 분들이 여럿 나서서 좋아보였다. 승용차 한 대로 모시기로 했는데 짐을 실어 준다고 와서 동승한 사람이 4사람이나 되었다.
원장수녀님은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담이 되는 눈치였다. 짐을 차에 실어 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임지까지 간다는 네 사람이 짐이 되는 것 같았다. 마음의 부담을 가지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도가 지나치면 상대방에게 누가 되고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실어드리고 배웅하는 것이, 가시는 임한테 부담이 안 되고 홀가분해야 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하는 일이 아무리 선하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지나치면 상대방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짐이 된다는 걸 알아야겠다.
원장 수녀님 배웅 건으로 인하여 논어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떠올랐다.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니 두 말 할 여지없이 중용(中庸)을 강조한 말이라 하겠다.
우리는 살면서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이런 일을 여러 번 자행(自行)했거나, 남이 하는 일을 보기도 했을 것이다. 좋은 일이라도 말과 행동에 중용을 기하지 못하면, 오히려 하지 않은 일만도 못한 결과를 만들고 마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서로 만날 때는 기쁜 마음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떠날 대는 그와 달리 아쉬운 미련이 앞서는 것이다. 어쩌면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슬퍼하기도 하고, 가지 못하게 붙잡아 앉히고 싶은 미련을 갖게도 되는 것이다.
인생 경륜이 많은 분도 이별할 때 법화경에 나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을 떠올리면서도, 평정된 마음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이별 앞에서는 감상에 빠져 눈물을 보이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드시 헤어지는 게 상도 아닌 철칙이란 걸 알면서도 인생무상과 허무감에 빠지는 것이 일쑤 있는 일이라 하겠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남의 짐을 덜어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무겁게, 어렵게 하는 남의 짐이 되어 살고 있는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남의 짐이 되는 삶을 살아서는 아니 되겠다.
오히려, 나로 인하여 남의 짐이 가볍게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
원장수녀님의 송별 인사에 짐을 실어 도와드리려는 마음이 짐이 되게 해서는 아니 되겠다.
일상적인 평범한 얘기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일까!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오히려 그에게 짐이 되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되겠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은 못할지라도 내 삶이 남에게 짐이 되지는 않는지 청진기를 찾아볼 일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지나쳐서 좋을 건 아무 것도 없다.
좋은 색도 과다사용이면 어두운 색이 될 뿐이지 좋은 빛깔이 될 수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좋은 일 한다는 명분으로 남의 어깨를 무겁게 해서는 아니 되겠다.
행하는 자의 의식 수준과 태도가 어떠하냐에 따라, 짐을 덜어 주는 사람도, 짐이 되는 사람도 되는 것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회인을 비롯하여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짐을 덜어 주는 사람도, 짐이 되는 사람도 결정되는 것이다,
남에게 도움을 준다고 한 일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겠다.
짐을 덜어 주는 사람, 짐이 되는 사람, 내 삶은 어느 쪽인가 ?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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