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인 이기명 고등과학원 부원장이 중국의 베이징수리과학응용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은 과학기술계에 충격이었다. 우주 기원을 찾는 '초끈 이론 전문가'인 그는 2006년 국가 석학에 선정됐고, 2014년에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그가 중국 연구기관으로 옮기는 주된 이유는 정년 때문이라고 한다. 강사라 울산과학기술원 교수가 지난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기후과학연구소 단장으로 옮긴 것도 비슷한 배경이다.
전 세계 최상위급 학술지에 어느 국가가 가장 많은 논문을 실었는지를 분석한 '2024 네이처 인덱스'에서 중국은 처음으로 미국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나이도 국적도 따지지 않고 전 세계에서 인재를 데려와 연구하는 환경이 낳은 결과다. 중국 정부와 민간 기업의 투자를 합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이미 2020년 기준 404조원으로 한국의 4배를 넘었다 . 중국의 '과학 굴기'는 괜히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과학기술로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은 올해 R&D 예산 삭감 파동을 거치면서 인재들의 '탈한국'이 증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삭감 이전 수준으로 복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연구 현장은 인재 이탈 방지 등 피해 회복 방안을 촉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국 인재에 기반한다. 젊은 연구자들이 맘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은 물론 고경력 과학기술인들이 국가 과학기술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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