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중앙시장. (사진=김영복 연구가) |
1611년 허균(許筠, 1569~1618)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藁)』의 조선 팔도의 명산 식품을 열거한 식품서 도문대작(屠門大嚼)에 대추에 대해 '보은에서 생산된 것이 제일 좋고 크며 뾰족하고 색깔은 붉고 맛은 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정약용(丁若鏞)의『경세유표(經世遺表)』에도 청산과 보은의 대추가 나오며, "비야 비야 오지마라, 대추 꽃이 떨어지면, 보은청산 시악시들, 시집못가 눈물 난다."라는 타령조의 민요가 있다.
대추나무는 초복 무렵에 첫 수정을 하고, 이때 실패하면 중복이나 말복에 또 수정을 하게 되나, 수정을 잘 했다 하더라도 추석 무렵에 비가 내리면 대추 농사를 망치게 된다.
그러니 "보은 아가씨 추석비에 운다."라는 애달픈 속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은에서는 과일이 많이 달리기를 비는 민속에 8월 추석날 조밥을 해서 과일나무에 얹어 놓으면 그 다음 해에 조밥 수만큼 과일이 많이 달린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대조(大棗) 또는 목밀(木蜜)이라고 불리는 대추는 독이 없고 맛이 달아 오장과 십이경맥을 도와주는 역할로 장기간 섭취하더라도 몸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종류 약재들의 성질을 서로 조화시켜 기를 보해 비장의 기운을 활성화시키는 약재로 유명하다.
김세복 대추밀냉면 입구. (사진=김영복 연구가) |
'김세복대추밀냉면(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로 3길14 전화 043-544-3563)'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개업한지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은데, 보은에 들어서서 "'김세복대추밀냉면'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위치를 알려 준다. 적어도 보은에서 유명한 맛집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토요일 일요일은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으로 웨이팅이 걸리는 보은 시장의 맛집이다.
'대추밀냉면'을 개발한 김세복(79년 생)세프는 요리고등학교를 나오고 군에서 장교식당의 취사병으로 있었으며 서울 J대 경영학과를 나와 울산에 있는 H 호텔에서 6년 동안 근무하고 나와 창업을 했다고 한다.
대출밀냉면. (사진=김영복 연구가) |
1969년부터 1987년 까지 조사하여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펴낸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韓國民俗 綜合調査報告書)』향토음식 경상도지방 주식편 에 '밀국수냉면'이 나온다.
이 책에 보면 '경상도는 냉면이 없는 것으로 여기나 진주에서 녹말국수 아닌 밀국수로 나오는 냉면이 있었다.'라고 나온다.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의 조사자들이 경상도지방의 향토음식을 조사할 당시인 1969년에는 진주에 '진주냉면'이 완전히 사라진 후였던 것이다.
다만 밀국수를 찬 육수에 말아 먹는 '밀국수 냉면'만 존재했던 것이다. 사실 옛날에는 메밀이 흔했고 밀은 아주 귀했다. 서울에서도 만두라든가 국수를 밀보다 메밀로 만들어 먹었다.
밀가루는 한자로 면(麵)이라고도 하지만 국수와 혼동되어 잘 쓰지 않았다. 말도 밀가루를 뜻하지만 통용되지 않았다. 그 대신 '진말(眞末)'이란 한자어를 사용하였다. 진말은 가루 중에서 가장 좋다는 뜻이다. 쌀가루나 메밀가루와 달리 밀가루에는 글루텐(gluten)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반죽이 잘 되었다.
정약용(丁若鏞)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밀가루인 맥설(麥屑)을 진말(眞末) 혹은 사투리로 진가루(眞加婁)라 하는데, 면(麵)을 두고 음식의 이름인 국수(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했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성경잡지(盛京雜識)」에 면은 우리나라에서 진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진말은 음식을 만드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왕실의 제향에 올라가는 구이(餌)는 본래 말린 쌀과 보리로 만들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쌀가루에 진말을 섞어 끓여서 만들었다.
대추비빔밀냉면. (사진=김영복 연구가) |
어쨌든 경상도의 밀국수냉면과 보은의 특산물 대추를 이용해 '대추밀냉면'을 개발한 김세복 세프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수요일 점심에 찾아간 김세복대추밀냉면이 위치한 보은종합시장안은 썰렁했다. 사실은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이렇다
전통재래시장(傳統在來市場)은 소상인들이 모여서 갖가지 물건을 직접 판매하는 전통적 구조의 시장을 말한다. 3일장, 5일장 같이 노천 장터에 사람들이 모여서 열리는 정기시장에서 출발하여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요즘엔 소상인들의 연합체 구조를 갖춘 상설시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통시장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밀려 점점 쇠퇴해 오다 정부의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정책에 따라서 대도시의 주요 상설시장은 비를 막을 수 있는 아케이드 구조로 개선하고 지자체들은 다양한 전통시장 살리기 정책을 펴면서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지금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비해 한산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전국의 전통시장 중 먹을거리로 인해 전국으로 알려지게 되고 시장이 활성화된 곳도 더러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서울의 광장시장이다. 광장시장은 순대, 김밥, 녹두전, 찹쌀꽈배기, 육회 등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장이 되었다.
인천신포국제시장도 인천에서는 서울 광장시장 못지않게 사람들이 시장 골목을 꽉 채울 만큼 붐비는 곳으로 닭강정을 비롯해, 대왕꽈배기, 사라다빵, 팥죽, 훈제오리 등 먹을거리가 천지다.
맛집을 중심으로 채소, 과일, 수산물 잡화 등 구획이 나누어 져 활성화 되어 있다.
사실 전통시장은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줄서는 맛 집 3곳 이상만 형성되어 있어도 그 재래시장은 활성화 된다.
그나마 보은종합시장은 김세복대추밀냉면 때문에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냉면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그런 탓에 보은종합시장상인회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김세복대추밀냉면에 들어서니 대학생들인 듯한 젊은이들이 냉면을 시켜 먹고 있었다.
대추가 들어간 밀냉면 모발. (사진=김영복 연구가) |
보은대추가 들어 간 노란 쫄면 직전의 쫀득한 면발 젊은이들의 식감을 충분히 자극할만하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햄과 듬뿍 올려 진 계란지단과 채 선 냉면 무 깔끔하고 시원한 육수는 MZ세대를 공략할만한 조합이고 맛이다.
이집 대추밀냉면을 맛있게 먹으려면 식초는 넣지 말고 면 한 젓가락 먹고 국물 한 모금 마시는 식으로 먹어야 한다고 한다. 마지막 국물 한 모금에서 느껴지는 칼칼함이 밀면의 하이라이트한다.
물론 면발을 한입 넣어 살짝 씹을 때 입안에 번지는 메밀 향과 굳이 식초를 부어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는 메밀냉면 마니아들 에게는 생소한 맛이고 적응하기 힘들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에 다가가기는 좋은 냉면이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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