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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소설가 |
6월29일 대전 우금치(대표 이주행, 예술감독 류기형) 관용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봤다. 적벽대전(赤碧大田), 붉고 푸른 대전이란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뭘까 싶었다. 사실 관습적인 곁눈질로 포스트를 봤을 때, 삼국지의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먼저 떠올랐다. 한국에서 영화로 크게 흥행한 적이 있다. 중국 후한 말 천하통일을 목표로 남하하는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 양자강 적벽에서 벌인 대규모 전쟁이다.
이 연극을 다 보고 난 뒤에 든 생각은 어쩌면 남과 북, 푸르고 붉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선 거대한 두 세력 간의 전쟁에 덧없이 희생된 민간인 영혼들을 위한 위령제였다. 적벽대전이란 제목의 의미가 그런 식으로 뒤엉켜왔다. 구체적인 줄거리로 말한다면 1950년 6.25 전쟁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던 많은 정치범과 민간인 7천여 명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군경에 의해 학살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죽은 혼령들이 마치 좀비처럼 깨어나는 첫 장면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엉뚱하게도 그들은 '강강술래'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천진난만한 놀이마당을 펼쳤다. 그리고 저승사자가 데려가려고 해도 슬프고 사무친 원한 때문에 죽은 자리를 떠나지도 못하는 원귀였다. 그 슬프고 원한 맺힌 사연은 그저 뒷풀이처럼 '미순이네'와 '영철이네' 이야기로 풀어간다.
미순이네 사연은 동생 미순에게 꽃신을 사 온다며 서울로 떠난 오빠 동호가 일본으로 강제 징병당해 끌려갔다 돌아와, 해방 후 야학으로 마을주민들을 학습시키고, 미군의 앞잡이가 된 친일경찰의 폭력과 토지개혁을 주장하다 대전형무소로 끌려간 케이스다.
영철이네 사연은 해방 후 보도연맹 인민위원장이 된 영철이 아버지가 자신은 마을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완장을 찼다고 가족들에게 거들먹거리지만 결국 빨갱이로 몰려 형사들에게 잡혀가 사라진다.
이렇게 사라진 사람들이 대전형무소에 갇히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남하하는 북한군에 의해 풀려나 보복할 것을 우려한 군경에 의해 6.28일, 7월3일, 7월6일 3차례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집단 학살당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란 별칭을 얻었다.
이 연극은 아직도 그 진상규명에 미적거리는 국가나 행정기관을 대신해서 민간차원의 위령제를 자처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연극을 보고 나와 여러모로 잔상이 남았다. 죽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혼백들, 대체 살아서도 억울한 죽음으로 삶을 꽃피우지 못했는데 죽어서도 원귀로 살아간다면 대체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들은 그들의 이기적인 삶으로 살아서도 권세를 누리고, 죽어서도 자손들이 무덤을 잘 보살펴서 편안한 사후세계를 누린다면 이보다 더 불공평한 일이 있을까 싶다.
다음에 연극을 조금 손질한다면 가해자들의 영혼을 불러놓고, 염라대왕을 모시고 진정한 심판을 벌이는 한 판 마당극을 펼쳤으면 한다. 연극의 마무리처럼 그 피해자(원귀)의 후손들이 소주 한 병, 떡 한 덩이 들고 와 위로한다고 될 일 아니지 않는가?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죽은 자의 시간은 현재형이란 말처럼 그 피해자에게 건네는 한마디 위로와 같은 이 연극은 죽은 원귀들의 눈물을 닦아 준 진정성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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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형 우금치 마당극패 예술감독 |
우금치 마당극패는 1990년 대전지역에 창단하여 마당극의 정신을 꾸준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적벽대전'도 마당극에 흐르는 저항과 해학의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부디 이런 연극단체가 굳건히 살아남아서 대전의 역사를, 삶의 자취를 보듬어주기 바란다.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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