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36- 삭힐수록 맛있는 아산 황석어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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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36- 삭힐수록 맛있는 아산 황석어젓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4-06-24 17:10
  • 신문게재 2024-06-25 8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황석어(원물)
황석어 원물.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이번 주 맛있는 여행은 아산으로 떠난다. 아산 하면 황석어(黃石魚)가 떠올리는 곳이다.

옛 고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아산의 맛있는 특산물 황석어(黃石魚)는 먼바다에서 유어 생활을 하다가 성장하여 산란기가 되면 아산만과 삽교천 개펄 지역에서 알을 낳기 위해 산란철에만 나타난다. 그래서 어쩌면 아산만의 황석어(黃石魚) 풍어기가 있었고 더욱 맛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아산만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의 영향으로 물의 흐름이 바뀌어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 아산의 황석어는 인걸(人傑)만 간데없는 것이 아니라 산천조차 예전의 아산이 아닌 것이다.



어쩌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아산의 황석어(黃石魚)가 그나마 손맛으로 명맥(命脈)을 이어오고 있는 장인이 있어 아산을 찾았다.

고려 때부터 우어[葦魚]를 잡아 왕가(王家)에 진상하던 양천(陽川)의 위어소(葦魚所 )와 밴댕이를 잡아 진공하던 안산(安山)의 소어소(蘇魚所)처럼 포구(浦口)의 파시(波市)에는 어량소(魚梁所)가 있어 어물(魚物)들은 진공(進貢)하는 역할을 했다.

이 어량소(魚梁所)에는 어물(魚物)의 진공(進貢)은 물론 생선을 말리거나 소금으로 염장(鹽藏) 등을 하는 생선간(生鮮干)이 있었다.

조선시대 이 생선간(生鮮干)은 원하는 자는 보충군(補充軍)에 입속하게 하여 입역(立役)을 마친 후 정7품까지의 한품수직(限品受職)과 자손 면역(免役)의 길을 열어 주어 양인으로서의 신분을 보장하여 주었다.

조선시대 수려한 경관을 지닌 갯마을이었던 아산의 백석포는 백석(白石)처럼 해안의 돌들이 흰 빛깔을 띠고 있어 뭇 문객들의 칭송을 받았다.

조선초기 문신 김구(金絿 1488∼1534)의 『귀산김선생실기(歸山金先生實記)』에는 '백석포귀범(白石浦歸帆)'이란 시를 지었으며, 인조 대에 부제학을 지낸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병자호란 때 처신으로 단죄를 받고 이곳으로 귀양을 와 지은 '백석어촌(白石漁村)'은 오교대반석(五敎臺盤石)과 함께 팔경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백석포리는 아름다운 풍광을 뽐냈던 마을이다.

'백석어촌(白石漁村)'몇 구절만 소개하면 '朝煙在川 酒熟底香(조신연재천 주숙봉저향)아침과 저녁으로 시내에 안개 자욱하고, 술 익어 뜸 아래 향기롭다. 生涯寄波濤。巨聲倉箱(생애기파도 거성위창상)생계를 파도에 맡겼으니, 바다가 곧 창고라네. 丈夫半浮居 婦女實行商(장부반부거 부녀실행상)사내들 반쯤 빈둥거려 아낙들 행상에 나서니. 魚腥走遠市 頂戴日奔忙(어성도원시 정재일분망)비린 생선을 먼 저자에 내다 파느라 머리에 이고 날마다 바삐 돌아다니지" 당시의 시대상을 잘 표현한 시(詩)라 하겠다.
황황서
황석어. (사진= 김영복 연구가)
그렇지만 밤새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던 남정네들이 낮에는 집에서 쉴 수밖에 없는 어촌 마을의 사정을 사대부였던 동주(東州) 눈에는 사내들이 빈둥거리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백석포(白石浦)는 영인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4㎞ 정도에 있는 전형적인 농어촌마을이다. 예전에는 아산만과 접하여 배가 드나드는 포구마을로서 어업과 상업이 발달한 곳이다.

한편 1530년(중종 25)에 왕명으로 이행 (李荇 1478년~1534년) 등이 편찬한 관찬(官撰)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0권 충청도(忠淸道) 신창현(新昌縣) 토산으로 황석어(黃石魚), 아산현(牙山縣) 토산으로는 황소어(黃小魚)가 나온다.

조선 후기에 김정호(金正浩 1804~1866)와 최성환(崔煥 1813~1891)이 함께 편찬한 지지(地誌)『여도비지(輿圖備志)』6권(卷六) 충청도(忠淸道) 아산현(牙山縣) 토산(土産)으로 황석어(黃石魚)와 황소어(黃小魚)가 기록되어 있다.

1861년 이후부터 1866년경 사이에 김정호(金正浩 1804∼1866)가 편찬한 32권 15책의 필사본 전국 지리지인 『대동지지(大東地志)』제5권(卷五) 충청도(忠淸道) 신창(新昌)의 토산(土産)으로 황석어(黃石魚)가 나온다.

황석어는 정조(正祖)20년(1796) 2월 11일자 1794년(정조 18) 12월에 을묘원행을 준비하기 위해 1794년 12월에 설치한 임시 기관이었던 외정리소(外整理所) 절목에 올랐다. 『일성록(日省錄)』

이렇듯 황석어(黃石魚)는 예부터 아산의 토산(土産)이었고, 정조 때 화성행궁시 대비와 왕의 수라상에 오른 귀한 생선이었다.

심지어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성소(惺所) 허균(許筠, 1569년 ~ 1618년)은 『성소부부고(惺所覆藁)』제26권 도문대작(屠門大嚼)에 '노란조기[黃石魚] 서해에는 어디에나 있으며,아산(牙山)의 것이 가장 좋은데 삶으면 비린내가 안 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삶으면 비린내가 안 나는 아산의 황석어(黃石魚) 그 염장(鹽藏) 비법은 있을까?

1932년 백석포(白石浦)에서 굴다리 식품 김정배 (59년생)대표의 외할아버지 고 강명천씨가 옛 어량소(魚梁所)와 같은 객주(客主)를 열어 황석어를 비롯한 각종 생선의 매매를 중개하면서 전통적으로 내려 오던 최상의 염장(鹽藏) 비법을 간직한 채 영업을 해 왔다고 한다.



그 후 고 강명천씨는 아산만에서 잡히는 황석어(黃石魚)의 염장(鹽藏)기술을 사위 고 김주학씨에게 알려 주고 그 비법이 3대인 외손자인 김정배 대표와 외손자며느리인 고삼숙씨에게 전수되었다.

김정배 대표는 외할아버지 때부터 전수되어 내려오던 황석어(黃石魚) 염장(鹽藏) 비법을 가지고 염장(鹽藏)한 황석어(黃石魚) 젓갈을 상온으로 삭혀 완전히 삭으면 외할아버지가 파 놓은 충남 아산시 시민로 89에 위치한 토굴(土窟)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 토굴 위치에 현재적인 공장을 짓고 100℃~120℃의 상온에서 열탕법으로 액젓을 생산하고 있다.

지금 아산만 특히 백석포(白石浦)에서는 황석어(黃石魚)가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안동의 간 고등어가 그렇듯 대를 이어 손맛이 이어오고 있는 황석어(黃石魚) 염장법(鹽藏法)은 보존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으로 김정배 대표는 어쩌면 이 시대의 유일한 '생선간(生鮮干)'이라 할 것이다.

굴다리식품 대표 사진
(우측) 4대 아들 김연광 (좌측) 3대 김정배 대표 . (사진= 김영복 연구가)
한편 김정배 대표는 황석어(黃石魚) 염장법(鹽藏法)을 아들 김연광(35세)에게 전수 중이다.

특히 4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아들 김연광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황석어(黃石魚) 염장법(鹽藏法)을 과학적으로 인증 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현재 고려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황석어(黃石魚)는 황강달어(黃江達魚)라고도 하는데, 참조기, 수조기, 부세, 민어 등과 함께 농어목 민어과에 속한다.

황석어는 15㎝에서 20㎝ 내외로 5월~6월에 산란한다. 까지 잡히는 황석어는 몸집이 작으며 차츰 커져 6월~7에 안강망 그물에 많이 잡히는 황석어는 제법 몸집이 커져 생물 황석어는 마리당 약 40g-50g으로, 1kg당(약40-60마리정도)된다.

우리나라 수산학의 기틀을 다진 물고기 박사 정문기(鄭文基 1898~1995)박사는 1974년 3월 15일자 조선일보에서 황석어에 대해'황강달이는 황색이 곱게 물들어있어 충남 아산(牙山)지방과 전북 군산(群山)지방에서는 황석어(石魚)라고 부르고 공사신서(攻事新書)에는 황소어(小魚)라고 기재돼 있다.

전남 법성포(法聖浦)에서는 황송어리, 목포(木浦)에서는 황실이, 인천(仁川)에서는 황석수어,평북 등곶포(登串浦)에서는 길이 1·5㎝(㎝)내외인 놈을 물강달이,10㎝(㎝)내외인 놈을 강달이,15㎝(㎝)내외인 놈을 세레나,15㎝(㎝)이상인 놈을 조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조기새끼와 강달이를 혼동하고 있다. 조선 순조 24년(1824년)에 한글 학자 유희(柳僖, 1773~1837)가 쓴『물명고(物名考)』와 1798년 이만영(李晩永)이 쓴『재물보(才物譜)』및 중국 명나라 시절 본초학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엮은『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황령무(황영무(靈))라고 기록돼 있다.

명(明)나라 송강부(松江府) 화정(華亭, 上海市) 사람인 풍시가(馮時可)의『우항잡록(雨航雜錄)』에는 추어(추어(魚))'매수(梅首),매동(梅童),춘래(春來)라고, 『물명기략(物名記略)』에는 영동어(靈童魚)라고 소개해있다.

중국 절강(浙江)에서는 새끼를 진주어(眞珠魚), 정주어(丁珠魚), 대두후어(大頭候魚)라고 했고 성어를 대두보어(大頭寶魚), 대극(大棘)(극) 매동어(梅童魚)라고 기록했다.'라고 나온다.

황석어 액젓
황석어 액젓.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이렇듯 황석어는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각각 이름을 다르게 부르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청관물명고(靑館物名攷)』에는 추래(酋來)를 '황석이'라고 하였으며, 다산(茶山)의『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추수어의 설명에서"추수어의 가장 작은 것을 황석어라 하는데 길이가 45촌이며 꼬리가 매우 뾰족하고 맛이 아주 좋으며 가끔 그물에 들어온다."고 하였다.조선후기 문신 황재(黃梓1689~1756)가 청나라를 다녀와 쓴 기행문『경오연행록(庚午燕行錄)』에서는 '몸살감기와 잇몸이 아프고 치근이 흔들려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는데 황석어 반찬이 있어 밥술을 뜰 수 있었다'고 했다.

싱싱한 황석어로 만든 찌개는 조기조림보다 더 국물 맛이 진하고 살은 부드럽다. 막 올라온 고사리를 깔고 조려도 좋고, 감자를 넣고 조려도 좋다. 아니면 황석어만 넣어도 좋다. 오뉴월 황석어는 뼈가 부드럽고 크기가 작아서 통째로 튀겨서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냥 먹어도 좋고 술안주로도 좋고 반찬을 해도 좋다. 황석어는 머리를 떼어내고 바싹 말려 두었다가 조림을 해 먹으며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오뉴월은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이다. 덩달아 입맛도 잃기 쉽다. 이럴 때 식은 밥이든, 막 뜸을 들인 밥이든, 사각사각 씹히는 물오른 상추 위에 한 숟가락 올리고 그 위에 황석어젓을 얹어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우적우적 씹어보자. 황재(黃梓)의 글처럼 잃었던 입맛이 거짓말처럼 살아난다.

황석어 젓갈은 고 문헌에 조선 초 세종 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중국 명(明)나라 황제 선덕(宣德)은'쓸 만한 해산물 등을 가지고 오라.'고 하여 세종(世宗)은 1429년 5월 2일에 황석어젓〔石首魚子] 4단지 등을 사신을 통해 보냈다.

황석어젓은 삭힐수록 진국이 우러나며 그 자체로 조미료로 이용하기도 한다.황석어 젓갈은 황석어가 많이 잡히는 5월 말에서 6월 초에 담근 것이 제일 좋다. 싱싱한 황석어를 바닷물이나 소금물에 깨끗하게 씻은 다음 건져내 물기를 빼고 천일염과 황석어를 1대 1 비율로 섞어 항아리에 넣고 맨 위에 소금을 끼얹고 비닐로 덮어 봉해둔다. 그리고 상온에서 삭혀 여름을 지나고 가을부터 먹기 시작한다.

황석어젓을 무칠 때는 쌀뜨물에 씻어 비린내와 짠맛을 살짝 제거한다. 여기에 마늘 대파·매실청·고춧가루를 넣어 무친다.

또 멸치젓 대신에 맑게 끓여 체에 받쳐 김장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옛날부터 서해에서는 김장할 때 김치 속에 생조기를 묻어 두기도 했다. 겨울철 김치가 시원해진다. 비싼 조기 대신 황석어젓을 많이 사용했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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