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
모처럼 평일에 연극을 본다고 서울을 다녀오니 자정이 넘었다. 한창 서울연극제 기간이어서 공식선정작이라도 챙겨본다고 바쁘게 작품도 보러 다니고 있다. 그날은 극단 바바서커스의 '아는 사람 되기(이은진 작·연출)'를 보고 나오는데 좌석 때문인지, 남북분단의 가족사 에피소드 때문인지 극장에서부터 내내 허리가 안 좋았다. 새벽 잠자리도 전전반측 끙끙대다가 어떻게 눈을 붙였는데, 꿈자리가 어수선하다. 바듯이 딸애 등교를 시키고 엄마에게 전화를 전한다. "아버지가 드디어 꿈에 나왔네. 근데 영 개운치가 않아."로 시작된 내 이야기에 당신도 간밤에 꿈자리가 안 좋았다면서 상통한 꿈 이야기에 사방 피붙이의 탈 날 것을 염려한다.
되지도 않을 꿈속을 헤매자면, 간밤 아버지는 생전의 그 퉁명한 목소리로 내게 갈퀴로 잡초를 걷어내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그 대꾸가 시원찮았으나 그 잡초 덤불더미에 잠이 깨서 무슨 사연인가를 따져본다. 옥상에 당신이 모아놓은 고철들을 치워놓으라는 이야기인지, 여전히 당신이 머물던 방이 치워지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당신이 미처 끝내놓지 못한 일들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기 시작한다.
식은 청국장에 대충 점심을 먹고 지역 극단 대표와 차 한 잔 마시러 나갔다. 이번에 국제연극연구소 H.U.E에서 '도장 찍으세요(이은준 작·연출)'라는 작품으로 '대한민국연극제'에 나가는데 그래도 우리 지역극단과 작품을 더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는데, 대뜸 사과할 게 있다면서 이번 내 아버지 장례식 때 미처 찾지 못했다고 그 사정을 이야기한다. 내가 지역연극 공연은 어떻게라도 찾아서 거의 빠짐없이 챙겨보는 편인데, 연극인들의 애·경사 소식은 협회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보니 그 소식이 뒤늦거나 전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나란 사람이 또 본래 그런 거에 개의치 않기에 그 도리들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다. 늘 연극 보러 가는 사람이다 보니 그분들이 내게 늘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는데, 내가 둔감하단 핑계로 그런 관계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서운함이 있을 법도 하다.
예술을 하든지 안 하든지, 우리 마음속에 걸린 그 무수한 사연 묶음들. 저편에 무척 미안해진다. 그렇다고 저편의 소식을 알았더라도 내가 또 그곳을 찾았을지 모를 일이지만 이참에 그 관계맺기를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어느 단체든 소속, 가입을 그리 마음에 두는 편이 아니라서 회원이 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무슨 영문인지 그편에서 나를 좋게 봐주고 필요이상의 기회를 제공해준 덕분에 여기저기 감투 아닌 감투를 달고 이 일, 저 일을 맡아 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오해가 없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 '노릇'에 대해서 나의 허술함을 다시 챙겨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 그 새김에는 마음쓰기의 '더함'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음력5월 몇 며칠이 할아버지 기일이고, 늘 골령골 추모제쯤 아버지가 산내 산소에 가서 미리 벌초를 해놓았었던 것을 이제야 알아챈 것이다. '그렇지 유월이었지.'하고 나는 당신이 했던 일, 아들 노릇을 하라고 산소 살피라는 그 뜻을 도진 허리병에 갖다 붙인다. 엄마에게 투덜댄다. "아들에게 갈퀴로 잡초나 모으라고 하지 말고 로또번호라도 찍어주지."라고. 그리고 다시 속으로 '하던 대로 돌려주시는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평소에 잘했으면 갈퀴대신 숫자를 새겨주셨을 터인데. 평소 내가 한 만큼 돌려준다. 사람을 살피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연극도 사람 이야기인데, 정작 늘 그 '사람'을 빼먹을 때가 많다. 갈퀴로 긁어 모야야 할 것, 벌초를 하면서 나는 당신이 한 일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모아야 한다든 것을 이제야 안다.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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