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용 교수 |
과학기술계 인력 부족 심화는 꾸준히 제기된 문제로 고용노동부의 신기술 인력수급 전망에서 그 심각성을 호소하고 있다. 2023년 8월 고용노동부의 조사에서는 2027년까지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나노 등 4대 미래기술 분야에서 약 6만 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첨단산업에 심각한 인력 부족 현상을 석·박사 이상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고 해외 고급인력의 유인은 저조하다고 한다. 고급 연구 인력 배출에 있어서도 이공계 박사 학위 취득 인원은 인구 1만 명당 39.0명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49.2명에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특히 디지털 신산업분야는 현재와 미래의 기술발전에 필요한 인력 수급의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디지털 인재양성사업은 첨단산업의 국가경쟁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마땅한 정책이고 시급히 지원해야 할 사업이다. 기술(Technology)은 과학(Science)의 원리를 사용하여 인간에게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단(skill)이며, 이에 따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부(富)를 영위하여왔다. 적자생존의 산업생태계에서 더 많은 이익을 내는 산업은 놀랄 만큼 성장하고, 도태되는 산업은 곧 사라지게 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다가 소멸의 과정에서 기술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는가 하면 기술의 수명이 짧아지면서 사람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진다. 이러한 가운데 이공계의 과학기술 인재양성이 시급한 산업인력을 수급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술의 진보와 산업의 발전을 위해 사람이 도구로 쓰여지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엄중하게 경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로 변화의 파도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낙오되기 십상이다. 특히 미래사회의 진출을 앞두고 있는 젊은이들의 마음은 기대감과 함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에서 장래 희망과 미래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받고 기회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미래가 준비되지 않은 시점에서 자신의 업무가 새로운 기술로 대체되는 상황이 닥치게 될 수도 있으며 기술발전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서 사용되다가 내 팽겨쳐 버려질 수도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은 행복해지는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사람이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밸트의 생산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는 부속품으로서 기계문명과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성 파멸을 묘사하였다. 더욱 빨라진 생산 속도에 맞춰 정신없이 반복적이고 빠른 동작으로 기계의 종속된 존재가 되었다. 채플린은 쉬는 시간에도 기계부품의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강박 신경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공장에서 쫓겨났다. 그 후로 떠돌이가 되어 살다가 다행히 한 착한 여인을 만나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기계화된 공장에 취업한 것은 도시 거주와 혁신산업에 종사하는 직업인으로서 부러움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지금의 근로환경은 과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좋아졌고 인간의 존엄과 행복할 수 있는 권리는 법적, 제도적으로 꾸준히 개선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의 산업혁명시대부터 현재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구조가 바뀐 것은 아니며 아직도 현재와 놀랍도록 닮아있다고 한다. 찰리 채플린의 산업화시대에 노동자가 거대 생산기계의 부속품처럼 전락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근로자는 그 일자리가 첨단기술에 의해 대체되거나 다른 직업군으로 바뀌는 형태이다. 그리고 기술의 수명이 짧아지면서 직업이 바뀌는 주기도 짧아졌다.
물론 인간 존엄성을 기반으로 근로의 질과 안전한 환경, 행복한 삶을 위하여 꾸준히 변화와 발전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삶의 주체로서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은 그치지 않아야 한다. 찰리 채플린은 다행히도 마지막에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었지만, 우리의 젊은 디지털 인재들은 전생애주기의 과정에서 어떻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도록 학교와 직장에서 사회적 신뢰와 배려의 차원으로 지원해야 한다. 필자는 기성세대로서 어먹했던 나의 젊은 시절과 현시대 젊은 층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불안과 고충의 무게감을 이해하면서도 당시 요행히도 잘 지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규용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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