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화진 뉴스디지털부 기자 |
배틀그라운드 모바일(PMPS) 현장 취재에서 프로팀 매니저에게 들은 말이다. 모 팀의 선수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팀 매니저에게 신분을 밝히며 말을 걸었고, 경기용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매니저는 나를 흘낏 쳐다보더니 선수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했다. "선수요? 음… 그럼 언니가 골라주세요."
당시엔 큰 충격이었다. 배틀그라운드 국내 대표 대회에서 이다지도 격식 없는 호칭과 언행이라니. 게다가 바로 직전 취재가 FC 온라인 국제 대회여서 더 비교됐던 것도 있다. e스포츠의 빅팬은 아니지만, 취재를 준비하며 선수들과 e스포츠 경기에 대한 기대를 키워왔는데 그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MZ 세대의 문화로 자리 잡은 e스포츠는 점차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리그오브레전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스트리트파이터 5, FC 온라인 등 4종목이 최초로 정식 종목에 채택됐고,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는 7월 3일 총상금 6000만 달러(한화 약 830억 원)가 걸린 역대 최대 규모의 'e스포츠 월드컵 2024(EWC)'이 개최된다. 즉, 이제는 e스포츠 선수도 다른 스포츠 선수들과 동등하게 공인으로서 의무를 지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속도가 붙고 있는 e스포츠의 기술·경제적 성장에 비해 선수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윤리·가치관 등 문화적 성장은 더딘 것이 현재 e스포츠의 현황이다.
경기 중 선수들의 욕설은 당연해서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가감 없이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성깔 있는' 모습은 젊은 층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 올해 3월 리그오브레전드 베트남 챔피언십 시리즈(VCS)에서 전 팀이 가담한 승부 조작 사건을 비롯해 2024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십 코리아(LCK) 스프링 시즌에 발생한 디도스 공격에 게임사의 미흡한 대처 등 e스포츠의 난항은 어느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e스포츠 산업이 이런 점을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2011년부터 매년 프로 선수들을 대상으로 소양 교육을 개최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 횟수와 참여자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대상자는 여전히 선수들로 제한된다. 각 지역의 e스포츠 경기장도 다양한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소양 교육은 개최된 전례가 없다.
e스포츠가 윤리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채 규모만 막대하게 커진다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진 설계가 부실한 건물처럼 작은 지진에도 쉽게 무너지게 될 것이다. 선수들을 비롯한 각 구단 및 업계 관계자들이 다양한 교육을 통해 e스포츠의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성숙한 e스포츠 문화를 확립해 떳떳하게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길 바란다.
최화진 뉴스디지털부 기자 Hwajin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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