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초대 감독이었던 김기복 감독을 포함해 대전을 지휘했던 감독은 총 14명이다. 기자가 출입하며 경험한 감독만 12명에 달한다. 탁월한 경기 운영으로 경기를 유도했던 지장(智將) 같은 지도자도 있었고, 부드럽고 온화한 스타일의 덕장(德將),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했던 용장(勇將)도 있었다.
기자와 가장 오랜 시간 마주했던 사령탑은 3대 감독이었던 최윤겸 감독이었다. 당시 40대 초반으로 K리그에서도 비교적 젊은 감독에 속했던 최 감독은 세밀한 패스와 빠른 측면 돌파로 팀의 체질을 바꿔놨고 꼴찌 대전을 리그 중위권으로 올려놓았다. 온화한 이미지로 '덕장'의 이미지도 강했지만, 안타깝게도 시즌 중 폭행 사건으로 대전을 떠나게 됐다.
4대 사령탑 김호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의 '거장'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울산과 수원에서 감독을 역임했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까지 경험했던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대전 부임 첫해 팀을 6강 플레이오프로 진출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거장'이라는 명성답게 선수단을 노련하게 이끌었으나 선수단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구단 수뇌부와 갈등이 이어졌고 여기에 성적 부진이 더해지며 2009년 시중 중 수석코치에게 팀을 맡기고 지휘봉을 내려놨다.
5대 사령탑 왕선재 감독은 김호 감독의 대행 사령탑으로 팀을 이끌다 이후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왕 감독은 수석코치 시절부터 선수들과 특유의 붙임성을 발휘하며 '형님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기자의 시선에는 감독보다는 조기 축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축구 좋아하는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왕 감독 역시 열약한 지원과 성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에 K리그 최대 사건으로 불린 '승부조작 사태'에 소속 선수들이 휘말리자 팀을 떠났다.
왕선재 감독 퇴임 이후 유상철 감독을 비롯해 김인완, 조진호, 최문식, 고종수 감독이 대전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들 모두 선수 시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전성기를 보냈지만, 대전 사령탑으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12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흥실 감독은 김호 감독 이후 유일하게 프로팀 감독 경력을 가졌다. 감독 경험이 없는 코치 출신의 감독들이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는 지적에 따라 수석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던 이흥실 감독을 선택했다. 이 감독에 대한 기자의 첫인상은 카리스마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지도자였다. 미드필더 출신으로 170cm도 안 되는 키에 시골 마을 이장님 같은 푸근한 이미지의 지도자였다. 6개월 남짓의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기자에게는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시즌 중 선임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은 서두르지 않고 노련하게 팀을 수습했다. 이기는 팀보다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으로 자신의 색깔을 천천히 입혀나갔다.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대전으로 원정 경기를 오는 지도자들 모두 이 감독의 끈끈한 축구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가난한 시민구단이었던 대전의 현실에 가장 어울리는 감독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취임 첫 해 대전이 하나금융그룹으로 인수되면서 이 감독은 시민구단 대전시티즌의 마지막 감독이 됐다. 2024년 6월 현재 대전은 기업구단 전환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다. 승격 2년 차에 재강등의 위기를 맞았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소방수로 대전은 4년 전 홀연히 팀을 떠났던 황선홍 감독을 재선임했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던 이력 때문인지 그를 바라보는 축구계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신중하다. 황 감독 본인에게는 축구 인생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절대 길지 않다. 늘 그래왔듯 대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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