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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엘리사벳 씨 |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딸도 외국 수도원에서 수녀로 봉사하고 있는 차 엘리사벳 씨가 두 권의 책을 필자에게 보내왔다. <첫사랑>과 <죽은이의 미소> 가 그것이다. 79세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 천주교 성당에서 연령회(선종봉사회)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차 엘리사벳 씨가 그동안 1000여 명의 고인들을 떠나보내며 체험한 이야기가 바로 <죽은이의 미소>이다.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재밌는 삽화와 함께 가볍게 풀어나간 책 <죽은 이의 미소> 는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연령회 봉사자로서 삶과 죽음을 묵상하며 살아가고 있는 차 엘리사벳 씨는 남편 고 김영걸 영화감독과의 만남에서 사별까지를 담담히 써내려 간 <첫사랑>도 본인이 직접 그린 재밌고 유쾌한 삽화와 더불어 생전의 남편과 가족 사진들을 넣어 예쁜 책으로 발간했다.
연령회란 본당에 있는 신도들의 단체로, 주로 임종하는 사람들과 죽은 이들의 장례, 그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단체이다. 외국의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우리 나라의 연령회는 한국천주교회에 토착화된 신도들의 봉사단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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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엘리사벳 씨 |
차 엘리사벳 씨는 <죽은이의 미소> 머릿글에서 “어느 날, 거울가게 앞을 지나다가 거울 속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길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웬 노인이 거울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어 너무 놀라 자세히 보니 그가 바로 나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도 몰라볼 정도로 변한 내 모습을 보고 왠지 마음이 우울했다”며 “내가 자랑할 만큼, 남들이 감동할 만큼 잘한 일이 단 한가지도 떠오르지 않아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일들,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일들이 필름처럼 뇌리를 스쳤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러나 “내가 살아오는 동안 희로애락의 에피소드는 있었기에 그 중 한가지 체험담인 연령회 봉사(선종봉사)를 할 때 있었던 이들을 글로 쓰기 위해 펜을 들었는데 쓰다 보니 내 마음속을 너무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첫사랑> 머릿글에서는 “첫사랑은 대부분 이루어지기 힘들다고들 하고 이루기 어려운 첫사랑이 이루어지면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고 하는데 부모님의 사랑 이외엔 어떠한 것이 사랑인지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 나에게 사랑을 깨우쳐 주고 영원히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눈물 지으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세월이 지나면 서서히 잊어질 거라고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어지긴 커녕 더욱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또 “50년 전, 행복했던 저의 첫사랑 시절을 그려보고 싶어 펜을 들었다”며 “첫사랑의 체험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테지만 글로 쓰면서 저는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가 그리운 사람을 만나본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책을 보시는 분들도, 아름다웠던 과거의 첫 사랑을 회상하시며 함께 추억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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