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필 교수 |
이렇게 도로위의 글씨와 네 개의 표지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교문앞을 지나 사거리에 이르면 또 다시 30㎞ 제한속도 표지판이 사거리에 접근하는 쪽마다 붙어있고, '신호과속단속'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CCTV가 도로위에 달려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주택가쪽에서 접근하는 보행로에는 도로와 보행로를 분리하는 도로분리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시설과 장치를 설치한 이유는 바로 민식이법이 강화되면서다. 어린이 보호구역안에서 제한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하고, CCTV를 설치하도록 법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처벌도 강화해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만 12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하게 한 운전자를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며, 어린이를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 500만~3000만 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민식이법은 2019년 충남 아산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계기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기점으로 논의가 크게 진전되어 2019년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19년 12월 17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되었고,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이렇게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정치인들이 법을 만들었고, 이 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 도로상에 각종 표지판과 시설을 설치하고, 법이 기대하는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해 단속하는 노력을 한다.
이렇게 단속을 강화해서 기대하는 효과를 얻었을까? 결과는 긍정적이지많은 않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통계에 따르면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19년 567건에서 민식이법이 시행된 20년 483건으로 줄었다가 21년 다시 523건으로 늘었고, 22년 514건, 23년 486건으로 줄어 사실상 변화를 확인하기 어렵다. 사망사고는 19년의 6건에서 이후 매년 2,3건만 발생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상의 경우를 보면 19년의 589건에서 20년 507건, 21년 563건, 22년 529건, 23년 53건으로 민식이법의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부나 지자체의 입장이 아니라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민식이법 3년차를 맞던 23년에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민식이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응답을 했다고 한다. 대다수의 운전자들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을 위해 법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민들의 생각을 반영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일부 지역에서 30㎞ 이하 속도제한을 50㎞로 올리거나, 오후 10시에서 다음날 오전 8시 사이 속도를 50㎞로 상향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것은 시설과 장비를 투입하고, 단속을 기본으로 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시설 및 장비를 투입하거나, 단속위주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비용을 발생시킬 수 밖에 없는 방식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방식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속적으로 지불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계속 부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일이 아니라 더 긴급한 다른 일에 지출해야하는 기회비용을 잃고 있다는 점까지 생각봐야 한다.
재정지출의 지속가능성은 물론 재정적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되는 방식이다. 특히 국가부채 문제를 내세우며 감세와 예산삭감을 주장했던 윤석열 정부 조차도 재정적 지속가능성이나 지출 우선순위에 대해 사실상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욱 실망스러운 현실이다.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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