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문화원이 주관한 5월 31일 '부평지하호 달빛기행'에서 참여자들이 지하호 입구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관찰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일제동굴, 부평에서 대전까지]
1. 지하호 27개와 일제 육군조병창
2. 강제동원 규명과 역사 바로알기
3. 전쟁유산의 대전 보문산 재발견
"이곳은 1945년 8월 광복 이후 시간을 멈춘 곳입니다, 강제징용 아픈 역사가 보존된 곳이고요."
기자가 인천 부평구 함봉산 지하동굴에 찾아간 날은 마침 '부평지하호 달빛기행'이 진행 중이었고, 부평문화원 해설사 천용임 씨가 동굴 앞에서 참석자들에게 이같이 설명했다. 부평문화원은 매달 시민들이 함봉산 일원을 걸으며 지하호를 관람하고 전문가의 해설을 듣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으로, 이날도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들이 삼삼오오 신청해 20명이 참여했다.
오후 7시 지하호 7개가 오밀조밀 이어진 함봉산 C구역을 걷고 해설사의 역사 설명을 청취한 후 C구역 6번째 동굴 가장 안쪽에서 조명을 모두 끄자 코 앞에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어둠이 참여자들을 감쌌다. 79년 전 일제의 강요로 이곳에 동원되어 굴을 파고 돌을 날랐을 조선인들의 희생에 묵념하는 것으로 달빛기행은 마무리됐다.
부평 지하호가 지금처럼 역사 체험공간이 된 것은 시민의 참여와 문화원의 뒷받침이 있어 가능했다. 이곳 지하동굴은 최근까지 새우젓을 보관해 숙성시키는 토굴 정도로 쓰였고, 지금도 일부 동굴은 개인이 새우젓 숙성실로 활용 중이다. 부평문화원은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함봉산 일원에 지하호를 찾아내고 주민들에게 증언을 수집하는 문화콘텐츠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구술기록과 사진, 동영상을 남겼다. 또 일제강점기 동굴 조성에 강제동원된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고 어린이들의 인형극이 제작됐으며, 마을 어르신들이 출연한 창작극 '세 남매의 봄'이 탄생해 공연됐다.
부평문화원이 주관한 5월 31일 '부평지하호 달빛기행'에서 참여자들이 지하호 안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관찰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지역 주민들께서 부정적 문화유산으로 여겨 가까이 다가가지 않거나 감춰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중요한 우리 역사이면서 문화자산으로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부평은 일반인들이 발굴하고 조사해 노래와 연극 등으로 지하호에 담긴 우리 이야기를 표현한 신선하고 바람직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대전 보문산에서도 일제강점기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비한 지하호 형태의 동굴을 조성했고, 몇 곳은 1945년 8월 마지막 공사 때 모습 그대로 실물이 남아 있다. 또 당시 대전중학교 재학생들이 근로 동원돼 보문산에서 굴을 파고 돌을 날랐다는 증언이 일부 수집됐으나 본격적인 조사와 기록화 또는 문화 콘텐츠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부평=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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