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시인 |
주최 측은 이종인 시인의 2023년 시집 『사라진 후』가 '전 지구적 비상사태인 생태 위기'를 바르게 극복하기 위한 진실한 열정을 담고 있다는 점을 수상의 이유로 들었다. 상금은 300만 원이고, 《삶의문학》 동인 중의 한 분이 후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삶의문학상〉은 1980년대 초 대전·충남 지역에서 간행된 진보적 종합 문예 무크지 《삶의문학》이 추구했던 정신을 고양하고, 선양하는 데 목표가 있다. 당시 《삶의문학》이 지향했던 가치는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갈고 닦되, 좀 더 '너그럽고 넉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한 '문학의 민주화'와 '삶의 민주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당시 《삶의문학》은 한남대를 중심으로 하되, 충남대, 공주사대 출신의 시인, 작가들을 포용하는 문학 모임이었는데, 1989년 이후에는 〈대전충남민족문학인협의회〉라는 합법단체로 해체, 재구성되었고, 마침내는 〈대전·충남작가회의〉를 거쳐 〈대전작가회의〉 및 〈충남작가회의〉로 분화, 발전되었다.
나는 그의 시상식을 보면서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는 현재 세종시 어진동에서 대중음식점 〈행복한곰탕〉을 운영하고 있다. 얼핏 봐도 선비 같은 그가 '행복한곰탕' 대표라니 뭔가 어색했다.
사실 시인은 시만 쓰는데도 하루가 모자란다. 게다가 독서는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어쭙잖은 나도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책상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어도 시간이 모자라서 잠을 설치곤 한다. 그런데 특히 잔일이 많은 음식점을 운영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긴 그는 직원을 여럿 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곰탕을 손수 끓였다. 식재료도 직접 구입했다. 직원은 모두 가족으로 각자 열심히 일했다. 사실 지금이 있기까지에는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모두 가족이어서 별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덤덤히 말했다. "곰탕집 사장이 되고 3년 만에 상가를 샀습니다. 세종시 정부 청사에서 가까운 건물이라 시세는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를 버텨낸 직후였습니다"라고.
그가 곰탕집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2015년 가족 중 한 분이 세종시에 곰탕집을 창업했을 때였다. 정부 청사 건물이 완공되고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직후였다. 그는 그 당시, 다른 지역에서 교회 전도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인 시인이었다. 더욱이 이제 걸음마를 뗀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때였다.
그는 가족의 창업 소식에 인사할 겸, 궁금한 마음에 세종시를 방문하게 되었고, 얼떨결에 바쁜 일손을 돕다가 문득 곰탕 기술을 배우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또한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시 창작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곰탕집 사장인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허락받았다. 그 후, 세종시로 이사하고 본격적으로 곰탕집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요리를 배운 적도 없었고, 식당에서 일해본 적도 없었기에 말이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모든 음식을 도맡았던 사장님이 건강 문제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청천벽력이었다. 다행히 병원 치료를 받고 일터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사장님의 몸 상태는 예전 같지 않았다. 가족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누군가는 곰탕집을 운영해야 했다. 결국, 그는 2019년 8월 가족 승계를 받고 곰탕집을 맡게 되었다. 3년 10개월 만에 직원에서 사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곧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이었다. 주변 음식점들은 줄폐업을 시작했고, 곰탕집 매출은 끝없이 추락했다. 폐업을 고민해야 했다. 그런데도 쉽게 폐업하지 못했던 이유는 코로나19 상황에도 찾아와 준 단골손님들 때문이었다.
그는 단골손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망할 때 망하더라도 고객들께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생각이 깊어졌다. 그래서 식재료에 변화를 주게 되었다. 곰탕의 주재료였던 소고기를 외국산(호주산)에서 한우로 대체했다. 이 변화는 오히려 곰탕집 매출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식재료 역시 국내산으로 변경했다. 매출은 코로나19 유행 막바지에 이르러 상승곡선을 탔다.
매출이 상승하자 그는 자신감이 생겼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상가를 매입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상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꿈같은 일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부단한 노력 끝에 그는 2022년 8월 상가를 매입하고 본인 상가에서 직접 운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우곰탕 가격을 내렸다. 현재 '행복한곰탕'의 한우곰탕 가격은 9천 원이다. 작년에는 세종시 70대 이상 어르신 40명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했다.
그는 올해도 식사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다. 불경기 탓에 녹록한 상황은 아니지만, 어렵고 힘들었을 때를 기억한다며, 도움을 주셨던 분들을 떠올리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나는 행복했다. 내가 선한 이웃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무엇보다도 나도 용기가 생겼다. 지금껏 좋은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당일 여행조차도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 같아서 삼갔었다. 그러나 그건 내 자신에게 집착일 뿐으로 내게도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어딘가 떠나보는 것이다. 용틀임을 해보는 것이다.
시인의 삶을 엿보며 이렇듯 나에게도 변화를 추구하다니 이 또한 선한 영향력인 셈이다.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그의 시집을 읽고 싶다. 긍정에너지를 닮고 싶어서이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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