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신세철 원장을 추모하기 위해 태안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유고집 발행과 흉상 제막식이 5월 31일 청산수목에서 개최된다. 사진은 생전 신세철 원장 모습. (사진=태안문화원 정지수 제공) |
청산 신세철 원장은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체결되자 우리 농업도 혁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우선 식량 작물의 대체농업을 원예작물로 전환하려는 꿈을 시도했다. 때로는 꽃이 밥을 먹여주느냐는 이웃과 친지의 질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들 꽃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인가? 그는 주저 없이 수목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힘든 역경을 극복해 30여 년 피땀의 결실로 전국 규모의 아름다운 청산 수목원을 조성했다. 군내의 연 30여 종을 수집하고 이어서 전국에 흩어진 200여 종의 연을 수집해 국내 최다품종의 연밭 애련원(愛蓮園)은 수목원의 백미로 꼽힌다.
청산은 지역 주민에게 긍지와 정서를 공유하기 위해 친구들과 뜻을 모아 신장소식과 남면시대(南面時代)를 발간했다. 또 1993년 민속유물 350여 점과 신석기 유물 20여 점을 수집하면서 태안군의 협조를 얻어 전국 최초의 마을 박물관인 '신월(新月) 향토유물전시관'을 건립했다. 남면지(南面誌)를 집필하면서는 부족한 발간비를 충당하는 등 헌신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어려운 향토문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태안군이 시상하는 '태안군민 대상' 수여자로 시상식 참석을 통보받았으나 자신은 자격이 되지 않는다면서 불참하자 가족에게 부상인 황금열쇠를 전달했다. 그러나 청산은 즉시 상당액을 군 상조은행에 환원해 감동을 주었다.
청산은 식물뿐 아니라 수산물의 생태오 분포에도 관심이 깊었다. 유년시절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집 앞 천수만 갯벌에 물막이 고기 잡기와 홰리질을 하며 바다와 친숙해졌으며, 몽산어협 창고에서 일제강점기부터 폐기되었던 엄청난 분량의 서류를 조사 정리하는 열정을 보였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탐독해 우리 해안의 수산물도 정리할 필요를 느껴 2006년부터 전문적인 조사와 연구로 '태안어보(泰安魚譜)'를 집필해 자신이 발행한 남면시대에 연재했다.
청산은 독립운동가의 발굴과 선양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우운 문양목 선생을 지역에서부터 조명해야 한다며 20여 년간 기념사업에 매진하고 대한독립단장 서병철과 독립운동을 펼친 원청리 임정호씨 선양사업을 위해 정부 기록보관소와 후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는 2019년 12월 30일 태안군 향토문화연구소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이영수 청산 신세철 흉상건립추진위원장은 유고집 발간사를 통해 "청산은 근면 검소의 신념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서 당당하게 개척해 오신 우리 지역의 선각자이었다"라며 "흉상건립과 유고집 발간을 계기로 고인이 구현하려 했던 더 아름다운 고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재학 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 전 이사장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을 신오복(新五福)이라는데 뒤늦게나마 청산과 마음을 같이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이제 누가 있어 끝없이 추락하는 향토의 미래를 토로할 것인가 암담할 뿐이다"라며 "작은 거인으로 평생 사랑했던 꽃과 나무와 더불어 이 땅에서 청산이 꿈꾸던 이상향은 영원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태안=김준환 기자·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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