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은 팔불용(八不用) 또는 팔불취(八不取)라고도 한다. 본래 열 달 못 채우고 여덟 달만에 나와 뭔가 모자란다는 의미다. 한자로 보면, 여기서 팔은 여덟 가지라기보다 강조의 의미로, 반드시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이다. 언어 역시 진화한다. 의미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확장되다보니, 내세워서는 안 될 여덟 가지가 들춰지기도 한다. 교양 없이 내세워서는 안 되는 것, 자랑하지 말 것이다. ① 자기 자랑 ② 아내(배우자) 자랑 ③ 자식 자랑 ④ 학벌 자랑 ⑤ 가문 자랑 ⑥ 재산 자랑 ⑦ 형제 자랑 ⑧ 친구 자랑이다. 듣는 사람이 불편해 할 수 있어 삼가야 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물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팔불출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자랑하려해도 자랑할 것이 없지만, 어쩌다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자랑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뜬금없이 팔불출이 나타나 인구에 회자되자, 언어의 마술사라 할 만담가 신불출(申不出, 1907 ~ 1969?, 극작가, 배우, 만담가)이 떠오른다.
수사학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유난히 말 잘하는 사람이 있다. 웅변과 연설 같은 논리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탄사 하나로 울고 웃기도 하고, 감동하지 않는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아, 서양에서는 조크, 유모어, 코미디, 개그, 우리는 재담 또는 우스개, 익살이라 한다. 그 중에는 언어도 있고 연기도 있다. 언어는 말이나 문자를 소재로 하는 '언어유희'이다. 말장난이라고도 한다. 말이나 글자를 재치 있게 사용하여 다양한 의미를 구현한다. 예술기법의 하나로 장르불문 모든 분야에 등장한다. 부질없는 장난이 아니다. 다의적 표현, 강조, 심화, 풍자가 이루어지고, 웃음과 눈물이 유발되기도 한다. 우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일제강점기에 만담(漫談)이 등장한다. 나라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당시 연극은 인정극(人情劇) 또는 비극(悲劇)이 주류였다. 희극 공연은 분위기에 맞지 않았지만, 숨 쉴 공간이 필요했다. 막간의 코믹한 촌극(寸劇)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만담가 신불출이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이름은 익숙할 만큼 들었다. 불세출의 예인으로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이리라. 본명은 신영일, 신홍식, 신상학 등 분명치가 않다. 예명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연기 생활이 고되었던 모양이다. 단역배우로 출연할 때는 예명을 '난다(難多)'라고 하였다. 어려움이 많다는 의미지만, 성과 합하면 '신난다'가 되어 주위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불출(不出)'이라 지은 것은 치욕의 일제 강점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사고 후 연극에 다시 안 나온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설도 있다.
처음부터 만담을 하였던 것은 아니다. 공연 막간에 인사말을 하곤 하였는데, 화술이 뛰어나 박수갈채를 많이 받았다.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연극 <동방이 밝아온다> 막간에 "새벽을 맞아 우리 모두 잠에서 깨어납시다. 여러분, 삼천리강산에 우리들이 연극할 무대는 전부 일본 사람 것이고, 조선인 극장은 한두 곳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동포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야 합니다." 하였다. 보고 있던 일본 경관이 호각을 불며 중지시키고 연행하였다. 단성사 사장 박승필이 보증서고, 연극계 은퇴를 서약함으로서 가까스로 풀려났다. 이때부터 만담가로 나섰다 한다.
창씨 개명을 강요하자 '에하라노하라(江原野原)'라 하기도 하였다. 민요의 후렴구이기도 하려니와 '될 대로 되라'는 뜻의 항의표시였다. 경찰이 난색을 표하자 '구로다규이치(玄田牛一)'로 하였는데 검을 현 밑에 밭 전자가 있으면 축(畜)이요, 소우 자 밑에 한 일자를 그으면 생(生)이 된다. 일본어로 '칙쇼(畜生)'가 되는데, 우리말 '×새끼'에 해당하는 욕설이다.
그의 이름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사회비판, 정치풍자와 풍성한 해학의 만담가임이 드러난다. 우리가 지금도 즐겨 부르는 신민요 <노들강변> 작사가이기도 하다. 뛰어난 예인이었음도 분명하다. 무정부주의였던 그가 1947년 월북, 인민배우로 공훈배우가 되지만, 비판적 시각이 변치 않아 1960년대 후반 숙청되었다는 것이 탈북자의 증언이다.
성현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술가 포함, 특별한 사람은 창의적 언어를 구사한다. 새롭게 만들거나 선택하여 사용한다. 만인의 귀감이 된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