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이슈현장] "대전·충남에서도 5·18은 있었어요"

  • 사회/교육
  • 사건/사고

[WHY이슈현장] "대전·충남에서도 5·18은 있었어요"

충남대 76학번 안은찬 씨 인터뷰

  • 승인 2024-05-16 17:36
  • 수정 2024-05-16 19:27
  • 신문게재 2024-05-17 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KakaoTalk_20240516_095804122
안은찬 씨는 32사단서 순화교육을 받은 후 함께 가혹행위를 겪었던 대전, 충남 대학생 77명의 명단을 작성해 보관해두고 있었다. 안은찬 씨가 명단을 들고 사진 촬영하고 있는 모습.
"5·18 민주화운동과 인권유린은 광주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에요. 대전·충남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어났죠.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라는 투쟁이라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과거의 기억을 그냥 묻어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대전에서 사는 안은찬 (68·충남대 76학번)씨는 2022년 7월 초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부터 "5·18 관련 피해조사를 한다"는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과거 안 씨는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됐던 1980년 5월 17일 충청지역 대학생 예비검속 대상자로 체포돼 충남 연기군 '32사단' 포병단 포병대대에 끌려갔다. 학교 도서관에서 시국 선언을 했던 전적 때문이었다. 안 씨와 같이 시국 선언, 민주 시위를 한 후 32사단에서 고초를 겪었던 대전·충남 지역 대학생은 77명에 달한다.

안 씨는 "조사관 연락에 애써 묻어뒀던 40년 전 기억을 다시 꺼냈다"며 "당시 내가 겪었던 경험은 국가기록에도 서술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유신체제 속에서 살아왔던 안 씨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민주화를 위한 열망이 들끓었던 '서울의 봄' 시절 대학을 다녔다. 신입생 때부터 '흥사단아카데미'에서 활동을 했던 안 씨는 당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979년 11월 서울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던 YWCA 위장결혼식 사건이 일어났고, 지역 대학가에도 시국선언 바람이 불었다.

안 씨는 "민주화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고, 학생들한테 현 상황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79년 11월 29일 충남대 중앙도서관에서 시국선언 결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1980년 5월에 들어서는 본격적인 학생시위가 시작됐다. 특히 대전에서는 5월 1일 충남대 학생 5000여 명을 주축으로 학내에서 시국 토론회가 열렸고 이날 충남대, 목원대 등 3000여 명 학생은 교외로 나가 행진을 했다. 군인들의 삼엄한 경비 속 전두환 독재에 반발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한 가두시위는 전국에서 대전이 처음이었다. 5월 중순이 되면서 충남대, 목원대, 단국대, 공주교대 등 대전·충남 대부분 대학에서 학교 밖 시위를 했다. 이후 계엄령이 전국으로 선포됐던 5월 17일 시국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들과 과거 긴급조치 위반자, 대학 학생회장 등 대학생들이 예비검속자로 체포됐다. 학생들은 경찰서에 구금돼 혹독한 조사를 받은 뒤 당시 연기군에 있던 제 32사단 포병대대에 구금돼 순화교육을 받았다.

안 씨는 "그때 대전, 충남 대학생들이 32사단에 끌려가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말이 순화 교육이지, 방송에서 나왔던 삼청교육대 훈련과 동일했다. 강제 구금돼 가족도 모르게 단절된 공간 속에서 가혹행위를 밤낮으로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에 몇몇 이들은 실형을 선고받거나, 옥고를 치루기도 하고, 학사경고나 유, 무기정학을 감내했다. 길게는 취업도 못하거나, 건강이 나빠져 장기요양을 하고,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32사단에서 순화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서로의 인적사항을 작성했다. 이를 안 씨가 석방 후 학교 과사무실에서 타자를 쳐 명단을 보관하고 있었다.

40년이 지난 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로부터 연락이 와 안 씨는 직권조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32사단에서 같은 순화교육을 받았던 77명의 명단도 찾아, 수소문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 민주화를 갈망하던 대전, 충남 학생들의 열띤 투쟁과 충청권에도 미친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이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채 묻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 씨는 "조사위에서 나한테 처음 연락이 왔는데, 당시 자료들이 폐기돼, 아무런 근거 자료도 없다고 하니 5개월 동안 사명감을 갖고 몰두했다"며 "과거에 작성해둔 77명의 명단이 운이 좋게도 보관돼 있었고, 이중 총 28명을 찾아냈다. 이들을 불렀고 2022년 8월부터 4개월 동안 거의 매일 조사위 조사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KakaoTalk_20240516_095804122_02
안 씨가 갖고 있던 영치금품카드. 32사단에서 순화교육을 받었던 증거자료다.
현재 안은찬 씨를 비롯해 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대전·충남 5.18 민주동지회'를 결성한 상태다. 안 씨는 보관하고 있던 32사단에 잡혀갔을 당시 작성했던 영치금품카드, 대학에서 받았던 경고장, 1979년도에 썼던 시국선언문 자료 등을 당시 기록들을 5·18 기록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안 씨는 "내가 이렇게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5·18 관련해 완전히 정리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이라며 "전두환이라는 책임자는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역사에 묻어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고 5·18에 대한 완전한 해결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