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가장 잘 숨은 사람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가장 잘 숨은 사람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 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4-05-15 16:19
  • 신문게재 2024-05-16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4032101001709600069301
김홍진 교수.
조금만 읽고 자야지 하고 책을 펼쳤다 밤새 다 읽어버리는 책이 있다. 포제-폴 드루아의 '사물들과 철학하기'가 그랬다. 이 책은 아주 작고 사소한, 그래서 별것 아닌 사물들과 연관하여 사색을 펼친다. 그가 불러낸 사물들은 일상적 삶의 공간을 차지하는 소품 50여 가지이다. 그가 소환한 대부분의 일상적 세목들은 그 쓸모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을 쉽게 잊고 있는 것들이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적 주변에 존재하는 사소한 사물들을 응시하고 관찰하면서, 그것이 품은 존재론적 의미를 주의 깊게 사유한다.

사물이란 특정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적 실체이다. 라틴어에 어원을 둔 실체 'substance'는 바닥을 지지하고 있는 무엇이라는 뜻이다. 확장하면 세상의 근원이나 궁극적 본질, 현상 이면에 작동하는 본질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에게 사물이 갖는 의미, 인간과 사물이 맺는 관계에 대한 인식을 결락하고 있다. 사물을 단지 물질적 대상으로만 과학적 분석 대상으로 여기는 편협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관계의 의미론적 공백을 채우는 데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철학자 하이데거가 사물을 도구라는 영역으로 제한하고, 우리가 몸 들어 사는 세계를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도구 연관들이 맺는 의미의 그물망으로 본 관점과 연속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도구는 무언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도구가 지시하는 쓸모들이 삶의 목적과 의미를 함축한다. 요컨대 사물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적 실체라는 의미를 넘어 인간과 삶의 의미를 포괄하는 '관계'의 매개물이라는 것이다.

가령 이 책에서 사물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 하나는 선글라스에 대한 것이다. 선글라스를 쓴 비키니 여성과 히잡을 둘러쓴 여성 가운데 누가 더 자신을 잘 숨긴 것일까? 여기에 덧붙여 가면무도회의 여성, 마스크나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들, 탈레반 같은 정치적 반군까지도 추가할 수 있겠다. 이 질문에는 자기 은폐와 행동의 자유가 상관해 있다. 가면이나 두건 등으로 얼굴을 가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유의 문제를 지배 논리와 현실원칙을 넘어서려는 저항과 위반의 행동 심리학을 표상한다. 익명성이 부여될 때 강고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규율과 질서와 금기에 대한 위반의 쾌감은 극대화되는 법이다.



뻔하지만 히잡을 둘러쓴 여성이 가장 잘 못 감추고 있다. 가장 많이 가렸지만, 그 가림은 종교적이며 금기적 느낌으로 위반의 쾌감이나 행동의 자유가 없어 보인다. 얼굴을 가린 가면 무도회의 여성은 은폐에 성공한 경우이다. 그것은 가면을 씀으로 허용되는 일탈과 위반의 자유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가림은 쾌걸 조로, 반칙왕, 탈레반, 테러리스트들과 심리 기저를 같이 한다. 자기 은폐의 익명적 현상화는 정치적 저항, 또는 지배 질서에 대한 저항과 위반을 가능하게 한다.

선글라스를 쓴 비키니 여성은 숨김의 문제보다는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그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음은 불쾌감과 위압감, 심지어는 묘한 공포감과 신비감까지 유발한다. 대체로 독재자들은 선글라스를 즐겨 쓰는데, 혹 이유가…. 그들은 자신의 눈을 검은 선글라스로 가림으로써 역설적으로 모든 걸 볼 수 있는 시선의 권능을 획득한다. 마치 신의 전지적 권능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볼 수 있는 무소부재성에서 비롯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시선의 메커니즘이 권력이며, 전능한 억압은 획득된다.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 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중부경찰서 선화파출소, 중구 재개발 구역 특별순찰
  2. 대전YWCA , 추석맞이 Y-큰장날 개최
  3. 세종시자치경찰위원회, 교통환경 개선방안 논의
  4. 동구 정다운어르신복지관, ‘찾아가는 방방골골 은빛영화 상영회’
  5. 대전사랑메세나, YWCA쉼터에 사랑 전달
  1. 유등노인복지관, 중문교회와 후원 물품 전달식
  2. 민관협력 회덕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추석명절 키트 지원
  3. [수시특집] 나사렛대, 2025학년 수시모집 1213명 선발…간호학과 제외 수능 최저학력기준 적용 없어
  4. [수시특집] 나사렛대, "전국에서 등교가 가능한 대학이에요"
  5. 상명대 천안캠, 대학축제 'Deer For U_Youth' 개최

헤드라인 뉴스


“부정청약자10건 중 7건은 위장전입”… 청약시 전수조사 필요

“부정청약자10건 중 7건은 위장전입”… 청약시 전수조사 필요

공동주택 부정 청약자 10명 중 7명은 위장전입 수법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점수를 높이기 위해 부양가족을 늘리는 것으로, 공정한 청약경쟁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청약 시 전수조사를 통해 피해를 차단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복기왕 의원(충남 아산시갑)이 9월 6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불법전매 및 공급질서 교란행위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20년∼2023년)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이 합동점검을 통해 적발한 부정청약 건수는 모두 1116건에 달했다. 이 중 위장전입이 778..

대전 천동3구역 원주민들, 입주 앞두고 반발…왜?
대전 천동3구역 원주민들, 입주 앞두고 반발…왜?

대전 천동 리더스시티 5블록에 입주를 앞둔 천동3구역 원주민들이 시행을 맡은 기업들과 분양가를 놓고 극한의 대립을 벌이고 있다. 인근 4블록에 비해 5블록 분양가가 2500여만 원 높게 책정되면서 이에 부담을 느낀 원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6일 원주민과 사업 관계자 간 간담회가 예정됐지만, 양측의 이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으면서 갈등 해결은 묘연해 보인다. 5일 대전 동구 등에 따르면 천동3구역 주거환경개선지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전충남지역본부와 계룡건설이 공동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다. 시공은 계룡건설 컨..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9. 대전 서구 도안 미용실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9. 대전 서구 도안 미용실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족과 함께하는 추석맞이 세시풍속 체험교실 가족과 함께하는 추석맞이 세시풍속 체험교실

  • ‘가을은 수확의 계절’ ‘가을은 수확의 계절’

  • 추석맞이 음식 나눔 행사…‘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추석맞이 음식 나눔 행사…‘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 추석 앞두고 도매시장에 쌓인 선물세트 추석 앞두고 도매시장에 쌓인 선물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