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름다운 만남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배가된다. 아울러, 두고두고 회상하며 즐기기 위해 각종 기록으로 남긴다. 형상은 사진기가 없던 시절, 그림으로 남겼다. 계회도, 아회도 등이 그런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아회(雅會)가 성행했다. 말 그대로 우아한 만남이다. 글짓기뿐만 아니라 서화와 음악도 함께 즐겼다. 예술을 매개로 함께 향유하는 것이 목적이요, 차와 술을 곁들이기도 했다. 이른바 풍류다.
영·정조시대 문예부흥의 주역엔 중인이 많다. 신분사회여서 사대부로 대우 받지 못했을 뿐, 산관, 역관, 율관, 의관, 화원 등 잡과 출신 전문인이요, 사회 중추 세력이다. 조선 후기에는 이들의 경제력이 강해지면서 독특한 문화형성의 주체가 된다.
여항문인 모임인 '송석원시사', '벽오사' 등의 시사는 고품격 문화예술 향유가 지향점이었다. 호화롭거나 난잡한 음주가무가 아니다. 허경진의 <조선의 중인들>에 의하면 나름의 규약도 정하였던바, 벽오사의 것이다. 옛 사람의 진솔한 뜻을 본받아, "사철의 아름다운 날을 가려 모인다." "밥은 소채를 넘지 않고, 술은 세 순배를 넘기지 않으며, 안주는 세 가지를 넘지 않고, 차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 "마음대로 책을 읽고, 흥이 나는 대로 시를 읊으며, 한계를 두지는 않는다." 등이다. 모임 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시첩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금도 문인들은 이러저러한 글짓기 모임을 갖는다. 각자가 써온 작품에 대하여 의견교환과 비평하는 합평회가 주지만, 글쓰기 지향점이나 문학 이론 및 정보도 나눈다. 선인이 즐겼던 것에 비하면 다소 축소된 모양새다.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선인의 우아한 모습이 선망이었음은 분명하다.
김홍도 필 <서원아집도, 견본담채, 122.7 × 287.4cm, 국립중앙박물관> 6폭 병풍 |
<서원아집도>는 1778년(정조 2년) 김홍도가 완성한 그림으로 '서원아집(西園雅集)'이 주제이다. 서원은 중국 북송대 영종(英宗)의 부마였던 왕선(王詵)의 집 정원으로 수도 개봉(開封)에 있었다. 그곳에 왕선이 당대의 유명 인사를 초청, 베푼 아회이다. 왕선 자신과 서화가 미불(米?), 소식(蘇軾), 소철(蘇轍), 왕흠신(王欽臣), 원통대사(圓通大師), 유경(劉涇), 이공린(李公麟), 이지의(李之儀), 장뢰(張?), 정가회(鄭嘉會), 조보지(晁補之), 진경원(陳景元), 진관(秦觀), 채조(蔡肇), 황정견(黃庭堅) 등 16인(진사도(陳師道)를 넣어 17인이 되기도 함)이 모여 시 읊조리고, 휘호 하고, 현금(玄琴) 타고, 담론을 즐기거나 석벽(石壁)에 제시(題詩)를 적고 있는 모습이다. 원 <서원아집도>는 이공린이 그리고 미불이 찬문을 썼다 한다. 이공린 그림은 전하지 않고 미불의 찬문만 전하는데, 후대 사람이 그리는 서원아집은 미불의 찬문이 바탕이다. 김홍도는 같은 주제의 8폭 병풍과 선면화도 남겼다.
그러나 실제 서원아집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이상적인 풍류모임을 상상하여 그린 것에서 유래했다하기도 한다.
이종수의 <이야기 그림 이야기>를 참고하면,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서원아집이 열렸던 1086년 중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18세기 조선으로 옮겨 온다. 1폭과 2폭엔 예사롭지 않은 서원 입구와 사람 셋, 사슴이 등장한다. 사람은 주인공들의 시종일까, 뭔가 부지런히 나르고 있다. 3폭은 두 마리 학과 암벽에 글 쓰는 모습이 그려있다. 글 쓰는 사람은 미불이고, 바라보는 왕흠신과 벼루 받쳐 든 시동이다. 4폭은 오동나무 아래 병풍이 있고, 그 앞의 탁상에 놓인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이공린을 중심으로 5명의 문인과 시동 2명이 등장한다. 5폭에는 커다란 탁상위에 준비된 지필묵으로 휘호하는 모습이다. 소식의 무리 5명과 시녀와 시동 포함 8명이 등장한다. 6폭의 아래엔 비파 연주하는 진경원과 듣는 사람, 위쪽에는 강론하는 원통대사와 경정하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태호석, 소나무, 버드나무, 매화, 파초, 학, 사슴, 고동(古董) 등을 적절히 배치하여 운치를 살리고, 등장인물의 특징과 인품 표현에 진력했음을 알 수 있다. 5폭에 쓰인 강세황의 제발은 대표적 등장인물과 김홍도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품격 있게 자신과 조직, 주위를 가꾸고 가다듬는 것은 자신과 사회를 고품격으로 만드는 일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