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섭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
한의학에서도 호흡과 소화를 각각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들여 후천지기를 생성하는 행위'로 보고 있으며, 최초의 한의학 서적으로 여겨지는 '황제내경'에서도 "호흡미서(호흡을 가늘게 천천히 한다)"를 권고해 호흡을 중시했다.
호흡을 통해 들이마신 공기는 크게 두 가지로 작용한다. 먼저 폐에서 흡수한 '산소'를 심혈관을 통해 세포에 공급함으로써 인체의 에너지 대사를 활성화한다. 반면에 '향기'는 코의 후각 세포를 통해 뇌로 직접 전달돼 감정이나 인지 기능을 조절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호흡'에 대한 인식은 전자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실제 일상에서 '향기'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향수를 통해 매력적인 감정을 유도하거나 반대로 향초를 통해 벌레들을 쫓아내는 제품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서양에서는 에센셜 오일을 활용한 향기요법(aromatheraphy)이 전통적으로 활용돼 왔다. 또한 한의학에서도 곽향, 창출, 후박 등 향이 강한 방향성 약재에 습사(dampness)를 제거하고 소화기능을 도와주는 효능이 있다고 보고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향기요법의 효과는 각성·진정, 피로 해소, 스트레스 완화, 면역력 향상, 수면 유도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향기요법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수면 중인 대상자들에게 향기를 노출시켜 플라시보 효과를 제거한 경우에도 라벤더 향기가 대상자들의 수면의 질과 활력을 개선했으며 특히 각성·수면 중 뇌파에서도 차이가 나타나 주관적 수면과 객관적 수면의 질 모두 증진됐음을 보고했다(Scientific Reports, 2021년).
이러한 향기의 작용 기전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후각세포의 자극이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로 전달돼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며 향기 자체가 유도하는 보편적 반응(약리적 반응)과 개인적 기억과 경험으로 유도되는 개인적 반응(심리적 반응)으로 나눌 수 있다. (변연계는 인체 대사를 주관하는 시상하부와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해마를 포함하는 뇌의 가장 안쪽에 있는 부위로 체온, 혈압, 심박과 같은 자율신경의 조절과 공포, 분노, 쾌감과 같은 본능적 정서에 관여한다.)
재미있게도 한의학에서는 향기 즉, 후각을 주관하는 장부를 심장으로 보고 있다. 냄새는 코를 통해 폐로 흡수되지만 '향'을 인지하고 판별하는 것은 심장이 주관(心主臭)한다고 보았는데, 한의학에서 심장은 신지(정신과 인지)를 총괄하는 장부다. 즉, 향기의 작용에 대한 신경과학적 해석과 한의학적 해석이 꽤 일치하는 것이다.
다만, 향기요법에는 몇 가지 까다로운 점들이 있다. 첫째, 같은 향기에도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거나 다른 반응을 할 수도 있다. 둘째, 후각 세포는 같은 냄새를 오래 맡으면 금세 적응해 반응이 무뎌진다. 셋째, 방향성 제품은 공기 중에 계속 소모돼 반복적인 보급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디지털치료제 분야는 주로 정서와 인지기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VR, AR 기술은 시각과 청각을 넘어 촉각이나 후각까지 재현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기술들을 향기요법의 후각 자극과 연계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소리와 향기 자극을 통한 명상 유도와 수면의 질 증진과 같이 신경 자극을 통한 인지 및 감정을 조절하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개발된다면, 소프트웨어적 조절과 온·오프가 자유로운 디지털 기기의 특성은 개인에 최적화된 자극, 후각의 적응을 고려한 온·오프, 방향성 제품의 소모에 따른 비용 절감 등이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되는 분야다. 이영섭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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