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추도식은 박기우 옥계유진산선생선양회장의 추도사를 시작으로 박범인 금산군수, 정대철 헌정회장, 유한열 유가족 대표순으로 진행됐다.
이어진 2부 행사는 장호 금산문화원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추도 음악회가 열렸다.
옥계 유진산 총재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날 추도식에는 이종찬 광복회장과 박태권 전 충남도지사,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홍문표, 김종민 국회의원, 황명선 국회의원 당선인, 박희조 대전동구청장, 자유총연맹 여성위원장, 조계종 총무원장 혜인스님, 박선미 금산경찰서장, 김종욱 금산소방서장, 김복만, 김석곤 충남도의회 의원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박기우 선양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옥계 유진산 총재 50주기 추도식을 선생님 모교인 진산초등학교에서 음악회와 더불어 뜻깊은 행사로 거행하게 됐다"며 "선양회는 선생님 유지를 받들어 뜻있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유진산 선생은 조국광복을 위해 항일독립운동을 펴신 분, 농민운동과 청년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계몽운동을 펼치신 분, 이 나라 대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대화, 타협, 조정의 정치를 펼치신 분, 따뜻한 인간미가 있으신 분으로 청빈한 생활을 사셨던 분이라며 특히 네 가지 이유로 흠모하고 존경한다"고 추도했다.
유가족 대표로 단상에 오른 유한열 전 국회의원은 "옥계 유진산 총재님은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셨지만 편안한 일생을 뒤로하고, 구국의 일념으로 '선공후사' 정신을 견지하시며 일생을 사셨다"며 "난세와도 같은 현 시국에서 다시 한번 아버님 진산의 정치력이 그리워진다는 주변 분들의 말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했다.
한편 옥계 유진산 선생은 1905년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서 태어났다. 1
1918년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입학 후 교내 독립만세 벽보 사건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 자퇴 후 보성고등보통학교 전학해 졸업했다.
1933년에는 중국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에서 한인회를 조직하고, 충칭(重慶) 임시정부 연락원으로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
1년 뒤 1934년에는 일본 관헌에 붙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1935년에는 농민독본(農民讀本)의 편집을 하면서 필명을 진산(眞山), 나중에 (珍山)으로 고쳐 광복운동을 펼쳤다.
1945년에는 비밀결사대인 흥국회를 조직했고 이듬해엔 대한민주청년동맹을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했다.
1954년 금산에서 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4대, 5대, 6대 민의원, 7대 영등포구에서 당선됐다.
1970년 신민당 당수에 오르며 1971년 신민당 후보로 전국구 8대 의원에 당선됐고, 1973년 금산에서 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내리 7선 의원의 거물급 정치인이 됐다.
금산=송오용 기자 ccms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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