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爲(위할 위). 民(백성 민). 名(이름 명/ 훌륭하다). 判(쪼갤 판/ 판결하다)
출 처 :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
비 유 : 외압(外壓)에 굴(屈)하지 않고 정의(正義)에 입각하여 내리는 판결.
법(法)이란 글자의 뜻으로 보면 水 + 去의 회의 문자로 물처럼 순리대로 가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자 본래의 뜻은 水 + ?(해태 치) + 去라는 글자의 조합으로 된 글자이다.
여기서 水는 올바르기(平直)가 수면(水面) 같음이요, 치(?)는 신비한 동물로 이 짐승이 닿으면 그 사람에게 죄가 있고 없음을 판단할 수 있다는 동물이다. 거(去)는 '제거'이다.
따라서 법은 물과 같이 공평하게 죄(罪)를 조사하여 바르지 아니한 자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東亞漢韓辭典/ 동아출판사. 東洋思想辭典/ 우문당출판사)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와 22대 정조(正祖) 때 권엄(權?)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을 거쳐 병조판서를 지냈는데, 권력(權力)의 위세(威勢)에 굴(屈)하지 않고 바르게 재판(裁判)하기로 유명했다.
권엄은 1729년생이니 다산(茶山/ 정약용)보다 33세나 많은 대선배였다. 그는 특히 천주교 신자들을 극히 미워하여,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까지를 모두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폈던 사람이기도 했다.
천주교도들에게 강경한 입장이던 권엄이었지만, 다산(茶山)이 저술한 『목민심서』에서 그런 사감(私感)은 모두 잊고, 권엄이 한성판윤 시절 훌륭한 인간사랑의 정책을 폈던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여 '형전육조(刑典六條)에서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판서 권엄(權儼)이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어의(御醫/ 왕의 주치의) 강명길(康命吉)이 왕의 총애를 믿고 마음대로 행동하니, 조정(朝廷)과 민간(民間)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강명길이 서문(西門)밖 교외에 땅을 사들여 그 어버이를 이장(移葬)하고, 산 아래에 오래전부터 있던 민가 수십 호를 모두 사서 10월 추수 후에 집을 내놓고 나가기로 약속하였는데, 그 해 가을에 흉년이 들어 민가에서 약속대로 하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그러자 강명길이 종들을 시켜 쫓아내겠다고 한성부(漢城府)에 가서 고소하였으나, 권엄은 백성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강명길이 백성들 몰아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명길은 왕(정조)에게 부탁했고, 왕은 승지(承旨)를 시켜 가만히 판윤을 달래어 다시 고소가 있으면 포졸을 출동하여 민가를 몰아내게 하라고 분부하였다.
다음 날 강명길이 다시 고소하였으나 권엄은 전의 판결대로만 하여 조금도 변동이 없었다.
이날 왕께서 승지를 불러 책망하는데, 우레 같이 무서운 그 상감의 진노에 듣는 사람들이 모두 목을 움츠렸다. 승지가 권엄에게 가서 그 사실을 전하니 권엄이 말하기를,
"백성들이 당장 굶주리고 추위가 뼈에 사무치니 쫓아내면 모두 길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죄를 입을지언정 차마 이 일을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나라를 원망하게 하지는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 이튿날 강명길이 다시 고소하였으나 권엄은 전번의 판결을 따를 뿐 조금도 변동이 없으니, 듣는 자가 모두 위태롭게 여겼다. 수일 후에 왕께서 권엄을 불러 이르기를, "내가 조용히 생각하니 그대 판윤의 하는 일이 참으로 옳다. 그대는 참으로 충직한 사람이다. 그대는 참으로 얻기 어려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권엄이 이 말을 듣고 "우리 임금께서는 역시 만인지상(萬人之上)이다"라고 하며 감격하여 울었다고 한다.
그 임금에 그 신하이다.
우리는 권엄 같은 입법권(立法權)자들과 사법권(司法權)자들을 필요로 한다. 또 정조대왕 같은 통치자도 그리워한다. 민생(民生)과 민권(民權)을 그렇게 높게 여겼던 권엄, 그런 신하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통치자,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이 법(法)은 입법자(국회의원)가 입법(立法)해서 모든 국민들이 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입법자는 윗자리(上位)에 있고, 법을 지키는 국민들은 아랫자리(下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법을 지킴에는 만인(萬人)이 평등(平等)해야 한다. 오직 입법하기 전(前)에는 상위(上位)에 있을 지라도 입법한 후(後)에는 하위(下位)로 돌아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록 법 위에서 법을 제정한 자라도 법을 선포한 후에는 법의 밑으로 내려와서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법(法)에 자기가 범(犯)하여도 국가는 용서(容恕) 없이 처단(處斷)해서 제거(除去)해야 하니 이것이 법(法)이 수면(水面)처럼 평등(平等)한 것이다.
국가의 권력분립 원칙은 국가권력의 분리와 합리적 제약을 통하여 권력(權力)의 남용(濫用)을 방지하고, 이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으로, 권력 상호간의 견제(牽制)와 균형(均衡)을 통한 국가권력의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어떠한가?
언제부터인가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눈치를 보며, 재판의 공정성(公正性)을 훼손(毁損)하는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인사들에 대한 재판(裁判)과 판결(判決)은 법전문가가 아닌 일반국민이 인식하기에도 상식이하의 공정이 결여되어 있다.
국가가 바로 서려면 법이 공정히 집행되어야하고, 법이 공정히 집행되려면 입법자와 사법부가 권력에 굴하지 않고, 사익(私益)을 헌신짝처럼 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상현/ 인문학 교수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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