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안 차장 |
4월 28일 대전시청과 충남도청에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는데 첫날 각각 1000여 명, 600여 명의 조문객이 찾아 헌화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와중에 인터넷 사이트에 희생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희생자와 실종자를 모욕한 12명이 대전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일도 있어 기사로 타전한 기억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6월 7일 처음으로 대전을 찾았을 때 300여 명의 시민이 대전역에 모여 촛불을 들었고, 색소폰으로 '천개의 바람'을 연주하고 '4월에 핀 국화'라는 시를 낭독해 유가족을 위로한 일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2013년 7월 18일'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로 공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다섯 학생이 희생된 지 1년도 안된 시점에 발생했다.
그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세월호 유족들은 경기도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을 거쳐 대전까지 나무십자가를 어깨에 멘 채 찾아왔다. 전날 천주교 대전 유성성당에 도보행진으로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린 고 이승현군 아버지 이호진 씨와 김웅기군 아버지 김학일 씨를 시민들이 맞이하던 풍경이 엊그제처럼 떠오른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그때 그 기자실에서 4월 16일을 맞았다. 세월호 파란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를 대전에서 만나 그를 덮친 트라우마를 지역 독자들께 전하고 '당신에게 세월호란' 질문을 던지고, 대전현충원 기억식을 찾아간 것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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