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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소설가 |
나는 이번 총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2008년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화제작으로 떠올랐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미국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제목만 보면 노인복지나 이런 쪽의 영화인가 싶지만 청불의 갱스터 영화이다. 왜 제목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했을까 싶을 정도다. 다만 제목을 사회학적으로 좀 더 들여다보면 '(지혜로운)노인이라도 예측가능한 쉬운 나라는 없다' 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세상은 혼돈스럽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혼돈의 화신과 같은 살인마(안톤 쉬거)가 등장한다. 이 재앙적 인물을 통해 혼돈이 지배하는 현실세계에서 완전한 안전은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사건을 담당한 늙은 보안관의 시선으로 전한다.
대체로 이번 총선에서 노인세대는 보수정당의 후보를 택했다. 국정안정이 우선이고, 노인세대가 볼 때 예측불허하고 못마땅한 진보정당의 국회권력 장악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이 볼 때 이제 국회는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국정안정보다는 정권심판론이 강했다. 보수성향의 노인세대가 바란 바는 아니지만 자초한 면도 있다. 자신들이 뽑은 윤 대통령이 소통과 협치로 국정을 잘 이끌어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국민과는 불통하고 야당 대표에게는 사법리스크를 가하며 때려잡기에 급급했으니 어떻게 보면 '혼돈의 화신'을 자처한 셈이다. 일부 정치평론가의 입에서 벌써 윤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서 국정연설을 어떻게 할지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다. 국회의장이 될 가능성이 있는 추미애 의원과 조국개혁당의 조국 의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 악연들이 한 자리에 있는 자리에서 협치의 손길을 내밀지, 아니면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실제로는 보수지지층)는 메시지를 낼지 궁금해 하는 눈치이다.
우리가 '혼돈'이라고 하면 보통 어지럽고 예측불가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하지만 우주적인 의미에서는 '카오스'라는 말을 쓴다. 우주적 질서가 생기기 전의 혼돈 상태이다. 질서를 잉태하기 위한 혼돈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노인들이 예측 가능한 쉬운 나라가 아닌 것은 맞지만 '혼돈의 도가니'에서 질서가 탄생한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이제 3년이다. 당선 초기와는 분명 다른 분위기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분명 자신의 기조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탄핵의 목소리도 거세질 것이다. 남은 임기동안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협치의 아이콘이 될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본다.
윤 대통령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도 아니다. 오히려 문재인 전 대통령시절에는 검찰총장으로 활약했고, 부인의 사법적 리스크 때문에 그의 진면모가 묻힌 면도 없지 않다. 건전재정을 유지하겠다거나 의대증원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면 뚝심도 있어 보인다. 대통령이 무뚝뚝하고 얼굴이 굳어있다고 하지만 아이돌처럼 대중적 인기를 위해 늘 생글생글 웃으며 연출된 모습을 보일 일도 아니다.
다만, 노인의 얼굴을 한 보수지지층 뒤에 숨어 무사안일만 추구하다 탄핵을 맞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전철은 밟지 말았으면 한다. 이 나라는 노인이 예측가능한 쉬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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