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나이 듦에 좋은 책 한 권은 괜찮은 친구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를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원서로 읽어보고 싶었다. 세월의 풍상을 이기고 여전히 깊은 울림을 던지는 고전이다. 막상 책을 펼치니 글자가 작아 보기 힘들었다. 유튜브로 검색하니 'The old man and The sea'를 하루 한 장씩 해석하는 채널이 있었다. TV로 연결해 큰 활자로 날마다 보니 59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유튜브가 가진 반복 학습의 장점을 살려 공부하니 생소한 용어가 나와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외딴집에서 홀로 사는 노인은 조각배로 낚시를 나간다. 84일 동안 한 마리 물고기도 잡지 못해 재수 없다고 놀림당한다. 다음날 처음 40일 동안 함께 했던 소년이 구해준 미끼를 갖고 혼자 바다로 떠난다. 먼바다에서 태양이 뜨거울 때 그토록 바라던 물고기가 미끼를 문다. 청새치임을 직감한다. 밤낮으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마침내 물 위로 올라온 그를 작살로 잡는 데 성공한다. 배 옆에 물고기를 묶은 채 돌아오는 길에 피 냄새를 맡고 나타난 여러 상어 떼와 처절히 싸운다. 끝내 살점이 다 뜯어먹힌 채 뼈만 매달고 돌아온다는 단순한 줄거리다. 불확실한 앞날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고통과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최선을 다한 후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 고독 속에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감이 건져졌다.
노인이 됨은 무슨 의미일까. 생물학적인 노화는 인간에게 짊어진 숙명과 같아도 나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마다 달랐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나이 들어서 물러나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두고 후배들 앞길 막는다고 숙덕거렸다. 물러날 때를 모르고 자리에 연연하는 이를 노욕으로 물든 철부지라고 여기기도 했다. 지금은 나이 듦에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해도 당연하다고 여긴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서서히 무너졌다.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이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뛴다. 고희(古稀)는 두보의 시 「곡강」의 한 구절인 '인생칠십고래희'에서 나왔다. 일흔까지 산 사람이 퍽 드물었던 시대였다. 지난날 다녔던 회사를 돌이켜보면 정년퇴직하고 10년쯤 지나면 돌아가셨다는 선배들의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상갓집에 가면 70대에 돌아가셔도 호상으로 불렀다. 지금은 부고장을 봐도 여든 후반이거나 아흔이 넘는다. 호상이라는 말조차 잘 하지 않는다.
이제 일흔은 젊은 노년에 지나지 않는다. 회갑 잔치를 건너뛰더니 칠순 잔치는 옛날 말이고 팔순 잔치도 조용히 치른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잣대로 일률적으로 나이를 규정지어 개인의 능력을 한정할 수가 없다. 팔십을 산수(算壽) 구십을 졸수(卒壽)라고 부르는 호칭은 아흔이 넘어도 활기차게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아 시대의 변화와 어긋난다. 사람마다 인생경로가 다르듯 노화 과정도 제각각이다.
백세시대, 축복도 비극도 아닌 세상의 변화일 뿐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젊어질 수는 없겠지만 노화의 속도와 질은 생활 습관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많이 달려있다. 최근 의학계도 노화를 질병이라는 관점에서 항(抗)노화에 이어 역(逆)노화의 문을 여는 연구성과를 제시하고 있다. 건강한 백세인이 먼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노인과 바다의 한 구절이 가슴에 쏙 안겼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사람은 시간에 의해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고 나대로 해석을 해본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백세시대다. 끈기, 용기, 초연함, 연대감으로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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