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국립 한밭대 융합경영학과 교수, TEC 디렉터) |
문순득은 흑산 홍어를 사서 나주 영산포를 오간 상인으로 24세 때인 1802년, 5명과 함께 풍랑을 만나 일본 류큐(琉球)까지 갔다. 그의 일행은 9개월 후, 중국을 향해 출발했지만 또다시 필리핀의 루손 섬에 표류했다. 그는 필리핀에서 특유의 사업수완과 적응력으로 8개월 만인 1803년 상선을 타고 마카오에 도착해 광둥을 거쳐 1804년 난징으로, 다시 북경에서 조선 관료를 만나 귀국길에 올라 3년여 만에 고향 땅, 비금도 아래의 우이도를 밟았다(1805년). 문순득의 표류 경험을 인터뷰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정약전의 노력도 대단하다. 당시 신분제하의 관계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만남이 <표해시말>로 나타났으며, 암묵지 경험을 형식지로 기록하고, 이를 업데이트한 노력의 산물이다. 세상에서 처음이란 뜻의 '천초(天初)'라는 호를 그에게 지어 주었다. 마카오에서 본 금전, 은전 등의 화폐유통은 정약용의 책, <경세유표>에서 화폐제도의 사례로도 등장했다.
창의성 연구자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 구성요소로 개인, 현장, 영역 세 가지를 제시했다. 개인의 새로운 사고나 양식은 현장에서 평가를 받고 영역에 포함될 때 비로소 창의성이 발현된다. 이는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 탄생'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서 잘 설명된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인 보티첼리는 1485년 이 그림을 완성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 가치의 인정은 400년 시간 뒤 영국 사회비평가 러스킨(1819~1900)이 재평가 한 후 이다. 마찬가지로 문순득, 정약전, 최덕원 세 사람의 만남도 소중하다.
문순득은 언어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표해시말' 책 말미에 주요 단어(오키나와어, 필리핀어)를 한글로 표기해 놓아 언어학적으로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 그의 이문화 경험과 공감능력은 다른 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비슷한 시기 제주도에 표류한 필리핀 선원들이 언어소통 부재로 불행히도 9년간이나 억류되었다. 이들은 제주 관아에서 "어디서 왔느냐"고 손짓 발짓으로 물어도 먼 하늘을 가리키며 "막가외"(莫可外)라고 소리칠 뿐 답답한 표정만 지었다. 이때 그 나라 언어를 한글로 기록한 책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제주관아에서 문순득을 불러 필리핀 선원들에게 필리핀 방언으로 묻게 하자 그들은 조선에서 듣는 고향 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울부짖었다. 이때의 그 심정을 그 누구보다 공감한 사람은 문순득이 아니었을까? 이들은 그 덕분에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다.
문순득의 삶, 예상치 못한 사건 속,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명확한 목표를 갖고 긴 준비 끝에, 귀국길에 오르는 모습에서 '기업가정신'을 보게 된다.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5대양 6대주,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특유의 친화력과 공감능력, 문제발굴과 해결 능력, 그리고 가치와 기회 창출 등의 모습은 한국인의 DNA가 아닐까? 기업가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이를 돕는 사람들이 좋은 만남으로 계속 이어져, 우리의 미래를 열기를 필리핀 북쪽 섬, 루손에서 열리는 학회에 와서 소망해 본다./ 최종인(국립 한밭대 융합경영학과 교수, TEC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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