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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을 꿈꾸던 친구들이 많았다. 가수나 화가, 미스코리아가 되겠다던 아이들도 있었다. 2024년 현재 초등학생들의 선호 직업은 스포츠스타, 의사, 교사, 크리에이터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을 살펴보면 초등생 희망직업 1위는 운동선수(13.4%)였다. 2위인 의사(7.1%)는 전년보다 2계단 상승했다.
아이들의 직업 선택기준은 뚜렷하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13∼19세의 35.7%가 직업선택 중요도로 '수입'을 꼽았다. 적성·흥미는 30.6%, 안정성 16%, 발전·장래성 4.9% 순이다. 과거엔 적성·흥미가 1위였는데 2019년부터는 경제적 가치를 높게 생각했다.
얼마 전 자녀의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부모를 만났다. 유명 학원에서 진행한 입시 설명회였는데, 고등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도 상당수 자리했다. 한 초등생 학부모는 미리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서 왔다며 아이가 1등급이라면 무조건 의대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를 준비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학원가에선 5~6학년부터 과학을 시작하거나 '초등 의대관' 개설을 고민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공대나 자연대,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지 않는 분위기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좋은 이과생들의 1순위 진학은 단연코 의대다.
고3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수도권 대학을 염두에 뒀다가 지역인재전형 확대로 대전이 유리하다는 말을 듣고 지역 의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회의원 선거 이후 정책이 바뀔 수 있어 조금 더 지켜보겠다 했다.
2025학년도 비수도권 의대 정원을 2000명 확대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충청권 의과대학 7곳에서 기존 정원 421명의 두 배가 넘는 970명의 정원을 뽑게 됐다. 정원의 60% 이상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하면 충청권 거주 학생의 의대 진학 문턱은 상당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종로학원이 수도권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충청권이 가장 선호하는 이동지역이라는 응답도 나왔다.
하지만, 문턱이 낮아지면 그만큼 가치와 대우도 내려갈 수 있다. 전국의 의대생들이 동맹휴업과 수업거부를 하면서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도 의사가 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의정 갈등이 이어지는 두 달, 증원 숫자나 시기에 대한 재검토 여지가 있다는 말이 돌았다. 일각에서는 1년 연기해야 한다고 하고 양쪽이 반씩 양보해 1000명만 늘리면 된다는 제안도 들린다. 총선 이후 의정 협상은 안개속 이지만, 대학별 입시요강과 수시·정시 선발 인원 등 구체적인 내용은 5월까진 결정돼야 한다.
서둘러 타협점을 찾지 않으면 의료시스템은 망가져 회복할 수 없고, 이 화살은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이다. 환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상처를 살피고 보살펴 온 전공의 등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는 불명예를 달게 되고, 의료 공백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은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예비 의사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으로 인한 학부모와 수험생의 혼란은 어쩔 것이며, 오늘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들의 불안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강행해도, 뒤집어도, 양보해도, 모두에게 상처가 될 결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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