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마저 도와 행사에 5만 인파가 몰려들었고 인절미 시식회로 손에 손에 인절미를 든 관광객들로 인하여 무령왕릉과 왕릉원 화장실까지 인절미 콩고물이 가득했다고 한다.
이제는 옛이야기가 된 떡메치기와 전통놀이체험을 하면서 신난 아이들, 풍물패와 12개 공연팀의 풍악 소리에 신난 어른들, 화창한 봄날의 향연이었다. 그중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시장 상인들의 인절미 유래담 연극이었다.
인절미 이름이 붙여진 유래가 있다.
인조 반정 이후, 공이 큼에도 불구하고 이등 공신으로 밀린 이괄이 난을 일으켰디. 인조는 신하 몇 명만 데리고 공주로 피신 와 5박 6일간 머물다 갔다. 시름에 젖은 인조에게는 산해진미가 맛이 있을 턱이 없었다.
어느 날 찰떡에 콩고물이 묻은 떡을 맛보고는 "오! 절미로고"하며 떡 이름을 묻자 임씨 성을 가진 이가 진상했다고만 말했다.
그래서 임씨가 가져온 떡이 절미로구나 하면서, "앞으로는 이 떡을 임절미라 하여라"고 했다. 그리하여 '임절미, 임절미' 하다가 오늘날 인절미로 불리게 되었다.
2일간 많은 관광객이 운집하여 축제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장은숙 명예기자(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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