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에 6번에서 7번 웃는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아이들은 400번 이상 웃고 미국인들은 하루에 15번 웃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8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웃는 시간은 20일도 안 된다고 합니다. 일하는데 26년 잠자는데 22년, 근심 걱정하는데 6년, 7개월, 화장실에서 3년 반을 보내는 데 비해 웃는 시간은 현저히 적은 숫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웃으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말에 웃음의 종류가 많습니다. 그중에는 함박웃음처럼 좋은 웃음도 있지만 나쁜 웃음도 있습니다. 나쁜 웃음에는 쓴웃음, 여우웃음, 간살웃음 등이 있습니다.
억지웃음도 이상하고 간사한 여우웃음도 보기 싫지만 제일 기분 나쁜 것은 역시 비웃음 일 것입니다. 특히 나 모르게 내 뒤에서 나를 욕하면서 비웃는다면 참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비웃음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헛웃음을 웃고 여기에 더해 비웃기까지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신 것이 두 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을 말씀하실 때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비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우스워서 "나이 백 살에 아들을 보다니! 사라도 아흔 살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겠는가?" 하고 중얼거렸다. (창세기 17장 17절 공동번역)"
사라는 더합니다. 내년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을 천막 안에서 엿듣고 사라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창세기 18장 12절)"
이 부부가 하나님을 비웃은 이유는 둘 다 늙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아들을 낳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현실을 보고 아이 갖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의 현실적인 상황은 잘 파악합니다. 현실은 잘 직시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현실은 잘 보는데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성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을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와 곁에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도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어 포기할 때에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둘 다 아이 갖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안 되면 하나님도 안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들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포기할 때,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가능성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일 때에도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못 한다고 하나님도 못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사라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폄하거나 비웃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은 결국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삭의 이름의 뜻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을 비웃었지만, 하나님은 넓으신 사랑으로 그들의 비웃음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비웃음과 헛웃음을 함박웃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비웃었던 사라는 이렇게 말하며 웃습니다. "사라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주셨구나. 내가 아들을 낳았다고 모두들 나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구나.(창세기 21장 6절 공동번역)"
일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우리의 영혼은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영혼이 미소 짓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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