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 음악평론가 |
오페라 '이상의 날개'는 천재 시인 이상(李箱)의 시를 기본 축으로 특정 시점에서 바라본 한 예술가의 삶과 시적 가역성을 표현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이상의 시는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 해석이 다층적이다. 더구나 이상 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음악적 시구는 충격적이다. 한마디로 이상의 시를 오페라로 연출하기는 시 해석만큼이나 난해한 작업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오페라 '이상의 날개'는 오히려 한 예술가가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활용해 시의 회화성과 강렬한 초현실적 시각 이미지를 끌어냈다. 주제와 서사가 뚜렷한 기존 드라마 문법이 아닌, 장면마다 다층적인 상징구조가 지속적으로 변모한다. 이상의 난해한 시만큼이나 등장하는 모든 요소가 관객 내면에 다양한 해석을 요구한다. 시적 가역성 개념이 오페라로 이동한 것이다.
예컨대 작품의 첫 시 거울에서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는 무의식과 현실을 연결하기도 단절시키기도 한다. 동일인이자 두 자아를 상징하는 시인 이상과 자연인 김해경의 분열과 고통은 작품 전체를 꿰뚫는 본질이다. 이때 이상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인식할 때는 점과 숫자가 표시된 삼차각설계도 선에관한각서1 시가, 이상과 해경이 서로 마주 볼 때는 뒤집힌 숫자와 대각선 점이 특징인 오감도 시 제4호 환자의용태에관한문제 시가 영상으로 등장한다. 점을 연결한 대각선은 날개의 선으로 상징되고 이는 합창단의 대형으로 움직인다. 또한 오감도 시 제5호의 기하학적 묘사는 모순적인 이상의 시를 형상화했으며, 시 제1호에서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라는 반복적인 문구는 시인의 상실과 불안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마지막 합창에서 처절하게 울린다. 무채색의 세련된 무대와 역동적인 안무는 과하지 않았고, 끓어오르는 감각적 아픔은 절제와 상징미로 중심을 잡았다.
한편 오페라를 조화롭게 지켜준 것은 바로 오케스트라 반주였다. 일례로 서곡에서 단2도의 불안한 음정이 연속적으로 음역을 바꿔가며 등장한다. 음형은 상실이 주는 아픔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킨다. 특히 각각의 시와 에피소드에 사용된 특정 음형은 잘 짜여진 변주로 수시로 변하는 장면 전환에 맞춰 충실하게 움직인다. 통상 오페라 반주에서 보기 힘든 피아노가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적 균형을 유지시키고 개성있는 악기 음색은 성악과 대화하듯 주고받는다. 이렇듯 오케스트라 반주는 어디로 전개될지 모르는 비방향성 오페라 무대와 전체를 절묘하게 접착시키는 배경으로 단단히 작용했다. 단지 성악의 울림이 아리아의 개성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성악가들이 소화할 수 있는 음역이 너무 넓어 대사 표현이 노력만큼 잘 전달되지 않았음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울림은 초현실적인 오페라가 현실에 발을 딛고 지금 이 순간도 과거와 끊임없이 공감하고 있음을 인식시켰다.
끝이 보이는 시간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천재 시인에게는 희망없는 시기에 겪어야 할 상실과 아픔이 더 예리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한 예술가와 시의 세계를 이토록 세련되고 몽환적으로 표현한 제작진에 큰 박수를 보낸다. 실험적이면서 연출, 음악, 대본, 영상이 균형을 이루었고 수월성을 충족시킨 작품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비전은 언제나 경계를 넘어서는 도전에서 나옴을 생생히 보여준 무대였다. 창작오페라 '이상의 날개'는 대전오페라단이 다양한 시각으로 변화의 전환점을 맞이한 상징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지희 음악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