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아마도 가혹한 자연환경에 더해 맹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터전이 인간을 용맹한 전사가 됨으로써 살아남게 했을 것이고, 그 기질은 유전자 속 깊이 천착되어 오늘날의 인류를 만들었을 것이다. 싸이코패스에게서 보이는 전사(戰士)유전자도 적과 대적해서 용감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양심의 가책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 않는 전사들이 필요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역할을 담당해야 했기에 이 기질이 대물림되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전쟁의 시기에는 이런 전사들이 많이 필요했을 테지만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류는 평화 유전자를 키우고 싸움 유전자가 도태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작금의 상황에서 빛을 잃어간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싸움에는 일정한 법칙이 관찰된다. 우선 즉각적인 폭력으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으르렁거리는 단계를 거친다. 싸움이 진 쪽에게는 필히 큰 피해를 남기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상대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과시행동이다. 싸움닭이 싸우기 전 깃털을 꼿꼿이 세우거나 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행동이 이에 해당한다. 다행히 상대가 물러나면 이 싸움은 상처 없이 성공한 것이 된다. 그럼에도 상대가 물러나지 않고 대적하겠다면 싸움이 불가피하다. 대부분 동물들을 이 단계에서 서열이 정해지며 그에 따라 안정적인 질서가 유지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반응들을 이어간다. 비록 힘으로는 졌다지만 또 다른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이것이 원한이고 복수다. 많은 역사상 전쟁들은 과거의 원한을 갚기 위해 복수라는 명분으로 시작됐다. 이슬람의 박해로 세계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나치 학살의 원한을 간직한 채 팔레스타인 땅에 모여들어 강한 나라를 세웠지만, 다시 힘이 약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박해하고, 이를 참다못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테러를 일으키고, 다시 이들에 대항한다고 이스라엘이 힘이 약한 무고한 시민들을 볼모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곧 테라분자를 모두 색출할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이 전쟁이 과연 여기서 끝날 수 있을까? 전쟁의 과정 중에 또 다른 원한이 쌓이고 이를 보고 자란 자녀들이 미래에 힘을 키워 또 다른 복수를 꿈꾼다고 누가 장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권이 바뀌자 전 정권을 먼지 털듯 털어 포토라인에 세우고 있다. 그런데 전 정권은 그 전 정권을 적폐로 낙인찍어 척결한다고 부산했다. 그렇다면 다음 정권은 현 정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국회의원 선거가 목전인 즈음해서 전조를 보는 것 같다. 희망적인 메시지나 민생의 어려움을 타결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돌팔매에만 혈안이다. 자신이 옳다고 상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원한이 만들어 진다면 상대는 잊지 않고 나중에 복수를 다짐한다. 특히 정치적 복수가 무섭고 처절했던 것을 우리는 사화(士禍)의 역사로 배워왔다.
평화 유전자를 물려받은 선량한 시민은 무익한 싸움을 원치 않는다.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정치인들에 표를 몰아줬건만, 왜 싸움에만 몰두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실 싸우지 않는 평화가 가장 쉬운 것임에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고 평화를 이끈 인사를 위인으로 칭하는지……. 싸우지 않고 산다는 것이 그리도 힘들단 말인가?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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