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날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릴레이 경기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박진감 넘치는 <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 응원 함성은 시골학교 주변의 산골짜기를 떠나가게 만들었다.
2021년 나에게도 운동회 날 릴레이를 연상케 하는 일들이 줄을 이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전후해서 6월 14일까지 이어진 온혈가슴의 릴레이 주자들이 선전(善戰)을 벌였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릴레이 주자들의 모습이기에 눈을 한 번 돌려 보기로 한다.
첫 번째 릴레이 스타트 주자는 86학년도 도마 중에서 가르쳤던 심희련과 윤경옥 제자였다.
5월 12일 오전에 심희련 제자한테서 전화기 왔다. 삼성동 소재, 솔코리안 레스토랑에 윤경옥과 함께 점심 예약을 해 놓았으니 시간을 내 달라는 거였다. 보고픈 얼굴들이라 흔쾌히 수락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선물까지 받았다. 스틱 6년근 에니타 임골드 홍삼정이었다.
릴레이 주자가 너무 많아 상세한 기록은 어렵고, 약술로써 온혈가슴을 느껴 보고자 한다.
5월 13일, 84년도 충남고 졸업생 송재영 제자로부터 정관장 굿베이스 홍삼담은 블루베리.
5월 13일, 78년도 대전여고 졸업생 안상호 제자교사로부터 예산농원 꿀사과 1박스.
5월 14일, 대천거주, 정시은·정서은(부국건설 정지식 대표 딸) 자매로부터 꽃바구니 하나.
5월 14일, 한창숙 여사로부터 고급 닥스 지갑 하나.
5월 14일, 84년 충남고 정지식( 부국건설 대표) 제자로부터 전복 1박스.
5월 14일, 김정숙 수필가로부터 스틱 종근당 6년근 에니타 임골드 홍삼정 보냈다고 문자.
6월 2일, 2천년대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 졸업생 김민정 모친 김성연 여사로부터 소갈비탕 5 팩, 망고 6개, 돈(豚) 편육 큰 팩 하나.
6월 3일, 84년 충남고등학교 송재영 제자로부터 인산 죽염 240그램 1병.
6월 4일, 김복숙 여사로부터 추어탕 2그릇.
6월 5일, 이재분 여사로부터 상의 T-셔츠 한 벌.
6월 13일, 인천 사는 중학교 동기 이두영 친구가 날 위한 생미사 봉헌.
6월 14일, 김정숙 수필가로부터 5㎏ 방울토마토 1박스를 비롯한 편지와 봉투.
이 밖에도 날 걱정하는 분들이 용광로 가슴으로 병원을 찾거나 집을 방문하여 날 무르녹이고 가셨다.
김순자 부장님, 안명식 후배님, 정준용 어르신, 이병구, 정낙창을 비롯한 김성재 친구 분들이 온혈 가슴 주자들로서 날 울린 분들이니 그 어찌 무쇠가슴이라도 녹지 않으랴!
거기에 입맛 잃은 걸 알고, 별미식으로 입맛을 찾게 해 준다며 약속날짜를 잡으라고 종용했던 전용돈 친구, 엄기창 시인, 정낙창 친구, 박한순 형님, 이용만 형님!
이 소중한 분들의 따뜻한 가슴을, 마음을 머리에서 어찌 지워낼 수 있으랴?
김정숙 수필가의 인간미 어린 편지가 토마토 박스속에 숨 쉬고 있었기에 열어 보고자 한다.
「남상선 선생님께! 선생님, 선생님께 받은 은혜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든 마음인데, 정작 선생님께서 아프실 때는 제가 어떻게 마음으로 도와드려야 하는지를 몰라서 그저 당황스럽고 답답한 마음이네요. 선생님, 그렇게 마음의 충격 받으셨음에도 다시 또 많은 사람에게 카톡을 보내시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는 선생님의 크신 덕에 또 한 번 감동하게 되네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완전히 완쾌하시고 다시 뵈올 날을 기대하며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많이 드리지도 못하는 작은 마음이지만 저의 마음이나마 전해드리고 싶은 생각에 작은 정성 담았사오니, 꼭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치료받으시면서 드시고 싶은 음식이라도 한 번 사 드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럼 선생님의 건강하신 얼굴을 다시 뵈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게요. 선생님을 응원하고, 아끼는 많은 분들을 꼭 기억하시면서 힘내시고, 완쾌하시기를 바랍니다. 2021. 6. 14. 제자 김정숙 드림」
5㎏ 방울토마토 박스 속에 들어 있는 편지 내용이다. 따뜻한 마음만도 고마운데, 봉투 속에 마음까지 얹어 치료받으면서 먹고 싶은 것 사 먹으라는 그 한 마디! 순간 코끝이 찡하는 울컥함으로 세상 가장 행복할 때 흘리는 액체가 양 볼을 소리 없이 적시고 있었다.
나는 이때까지 살면서 이렇게 따뜻한 사랑으로, 가슴으로, 상대방을 울려 본 적이 없는데 내 제자들은, 친구들은 , 지인들은 어렵지 않게 날 울리고 있었다.
요즈음 나는, 따뜻한 사랑과 정성으로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제자들, 고마운 분들을 보면서 세상 많은 걸 배우며 깨닫고 있다. 그런 정성과 사랑이 릴레이식으로 이어지는 걸 보고 국민학교 시절의 운동회까지 떠올렸으니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배턴터치 없는 사랑의 릴레이이었으리라.
교사는 두 부류가 있다. 교과서에 있는 그대로 글만 가르치는 지식 전달의 교사인 경사(經師)가 그것이고, 사람 됨됨이 그 근본을 가르치는 인사(人師)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니 머릿속에 있는 것을 가슴으로 실천하지 못한 게 너무나 많다.
좋은 스승은 말로 가르치고, 훌륭한 스승은 행동으로 가르치며, 위대한 스승은 감동으로 가르친다 했는데 나는 글만 가르치는 교사로 마감을 한 거 같아 많이 부끄러워하고 있다.
내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제자들이, 친구들이, 지인들이 배턴터치 없는 릴레이식으로 음수사원(飮水思源)하며 살라고 깨우치고 있다. 따듯한 가슴으로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으니 이 어찌 나의 스승이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 갈 정도로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이 되기도 했다.
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온혈가슴의 릴레이 주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요로결석 통증으로 병원에 간 것이 전립선암까지 발견했으니, 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미리 손 쓸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챙겨 주셨으니 느꺼운 은총에 감사를 드린다.
얼굴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온혈가슴의 릴레이 주자들을 비롯한 제자, 친구, 지인 분들, 날 위해 걱정하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느꺼운 감사를 드린다.
솔향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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