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사라진 가치추구형 사회

  • 오피니언
  • 중도시평

[중도시평] 사라진 가치추구형 사회

  • 승인 2024-03-12 16:54
  • 신문게재 2024-03-13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손종학 교수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 대학 캠퍼스는 봄의 향기로 넘쳐난다. 단순히 추운 겨울이 물러나고 따뜻한 봄이 왔기 때문이 아니다. 신입생을 비롯한 학생들이 긴 방학을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왔기에 이들이 내뿜는 청춘의 열기로 아직은 제법 쌀쌀하지만, 캠퍼스에는 봄이 농익고 있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쯤이 대학은 가장 활기차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교수들도 덩달아 기쁘고 환한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들어가면 마냥 즐겁고 기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솔직히 표현하면 기쁨 뒤의 아쉬움이라고 할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물질만능주의라는 그럴듯한 미명하에 지극히 당연한 세상살이 이치로 인식되고 있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지 직업 선택의 순간에도, 학문을 배우려고 오는 대학의 전공을 정할 때도, 심지어는 사랑의 결정체인 결혼에서조차도 수입의 다과가 가장 중요한 결정인자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속된 말로 돈벌이가 된다는,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는 학과에 학생들이 몰리고, 그렇지 못한 학과는 폐과의 운명을 벗어나기 어렵게 돼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수요 변화를 반영하여 정부와 대학에서는 전공 없이 입학하는 소위 무전공학과 제도의 도입을 고민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세태는 필자가 근무하는 로스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해가 갈수록 법조인이 되기 위한 로스쿨 입학 경쟁률이 치솟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공무원과 직장인, 주부들이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로스쿨에 들어오기 위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주경야독의 사자성어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디 로스쿨뿐일까. 지금은 조금 수그러들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교사가 되기 위한 교대나 사범대학의 입학경쟁률은 여전히 높고 직업적 인기도 사뭇 낮지 않다. 그리고 최근 입학정원 증대를 둘러싸고 사회문제로까지 공론화된 의대도 또 어떤가? 의대 입학에 유리한 지방으로의 전학이나 대학생의 휴학이나 자퇴, 직장인들의 대학 입시 재도전 움직임도 일부 일고 있다. 이들 모습은 나름 이해되기도 하고 또 바람직한 면이 분명히 있지만, 왠지 속이 시원하지 않고 거북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왜일까?

가치가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 중의 하나가 인간은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물론 공동체에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즉 인간은 가치추구형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 속에서 가치를 제한다면, 만물의 영장이자 고귀한 존재인 인간은 그저 단순한 생존형 동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즉 이윤추구도, 황금만능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뛰어넘는 자아실현과 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가치 추구가 더해질 때 비로소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법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막스 베버가 현대사회에서 이윤추구라는 목적합리적 행위가 갈수록 더욱 중요시되고, 그 결과 가치합리적 행위 없이 목적합리적 행위만으로 합리성이 굴러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사가 되고, 의료인이 되고, 법조인이 된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소중한 일이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직업이 단순히 돈이 되기에 좋은 직업이라고만 인식되고, 이들 직업이 갖는 가치를 몰각한다면, 이는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왜 법조인, 의료인, 교사가 되려고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단순 직업의 안정성과 돈만이 아닌, 이들 직업을 통해 어떠한 가치를 실현하고, 공동체에 무슨 도움을 주려 한다는 답이 준비돼야 하고, 이들 답이 준비된 가치추구형 인간이 이들 직업군의 많은 수를 차지해야 한다. 수학 문제 하나 더, 영어 단어 하나 더, 리트 문제 하나 더 맞췄다고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교사, 의료인, 법조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직업에는 소명의식이 담겨야 한다는 말이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