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한 대전대 교수 |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뇌 유형들은 다음과 같은 군상들이다. 지금까지 다른 당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투표하지 않은 사람, 다른 사람의 입장에 결코 서 있지 않았던 사람, 비판력을 상실한 사람 등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 되는 경우가 "비판력을 상실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거의 맹목적으로 편향된 사고를 보인다. 비판력을 상실했으니 현재 자신이 떠받치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을 크나큰 잘못을 하더라도 어떡하든 합리화시키려 든다. "현재 A라는 사람이 부족해도 과거의 B보다는 낫다"식으로 호인(護人)하는 것이다.
얼마 전 정치인들에 대한 폭력, 곧 테러가 벌건 백주에 일어났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인식되는 우리 사회에서 반평화적인 테러 행위가 자행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테러는 객관성이 결여된, 주관에 함몰된 자의 "스스로 영웅 되기"가 빚어낸 비극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한쪽으로의 편향된 사고를 갖는다는 점에서 세뇌는 흔히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뇌가 모두 긍정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의 경우가 그러한데, 배타성이 없는 종교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만년에 걸친 아름다운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알려진 이 나라에서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테러리스트의 탄생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대개 몇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진다. 첫째가 '스스로 세뇌하기'의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몇십 년 동안 편향된 교육, 곧 세뇌를 강요당했다. 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좌우 논리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신의 취향이나 경제적 기반 등이 여기에 동반하면서 이에 동조하는 사유나 사건들만이 수용되는데, '스스로 세뇌하기'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다.
'스스로 세뇌하기'의 과정이 끝나게 되면, 이제 '세뇌 시키기'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세뇌된 '내가' 절대적으로 옳으니 상대방 또한 자신 입장이나 견해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 정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하는 사회에 대한 의무감, 당위감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들어온 정보, 혹은 스스로가 찾아낸 정보들에 대해 타인에게 '퍼나르기'를 시도한다. 자신의 휴대폰에 있는 타인의 메일이나 카톡방 등에 스스로 옳다고 믿는, 아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보들을 계속 올려댄다. 물론 이런 정보들에 어떤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담보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게 되면, 이제 '스스로 영웅되기'라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온갖 부조리로 가득차 있고, 그런 한계 상황을 구해낼 만한 어떠한 힘도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오판하게 된다. 객관성을 상실한 '스스로 영웅되기'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영웅된 사람'은 세뇌의 정점에 이른 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그릇된 영웅의식에 물든 자가 자신은 결코 세뇌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유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오히려 세뇌되었다고 역으로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가끔 TV에서 나오는 북쪽 사회의 편향된 사고들과 그 일사불란한 모습들에 대해 탄식하기도 한다
북쪽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으니 하나의 단선적인 생각만을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하나된 광기(狂氣)가 나오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다양한 정보를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지금 이곳의 세뇌된 사람들의 광기는 어떻게 볼 것인가.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오는 광기와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어서 오는 광기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매하고 잘못된 것인가.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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