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숙 수필가 |
은사님을 뵈었을 때, 85세 되신 고등학교 시절의 저의 은사님께서는 금년 8월에 증손녀가 태어난다고 자랑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지금 손자며느리의 뱃속에 아기 이름도 '미키'라고 지었다고 하시더군요. 태어나면 아기 이름을 '다은, 태민, 효선'이라는 이름도 지어 놓고 더 좋은 이름 있으면 자녀들에게 지어보라고 하셨다는 군요.
그리고 증손녀가 태어나면 상대를 이기려 하지 말고 아름답게 지는 마음을 갖게 하시겠다 합니다. 손자와 손자며느리에겐 '미키'를 사랑하되 어렸을 때는 눈을 마주보며 사랑하고 늘 웃는 얼굴로 바라보라고 하시고, 점점 자라면서는 미키 볼에 입맞춤으로 사랑해주며 칭찬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사춘기가 되면 엉뚱한 짓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 엉뚱한 짓을 하는 것도 사춘기니까 하는 정상적인 성장 과정이라 하십니다.
은사님 말씀을 하다보니 '코끼리 사슬 증후군'이란 말이 생각나는 군요. '코끼리 사슬 증후군'이란 충분히 힘을 갖고 있음에도 스스로 주어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서커스단에서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데 서커스단에서는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어렸을 때 아기코끼리의 뒷다리를 말뚝에 사슬로 묶어놓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용을 쓰고 안간힘을 써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알게 된 아기코끼리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말뚝 주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멈춰버린다고 하지요.
이제 아기코끼리가 성장하여 어른 코끼리가 되었습니다. 몸도 커지고 힘도 세졌습니다. 커다란 물건도 실어 나르고, 큰 나무도 끌고 다닙니다. 그런데 말뚝에 사슬로 묶이면 달라집니다. 이미 성장하여 몸이 커져서 발로 차기만 해도 박살 날 말뚝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 경험하고 학습된 무기력이 코끼리의 몸 안의 능력을 구속하고, 더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멘탈 블록(정신적 차단)을 만들어 냅니다. 몸이 커져서 물리적인 힘이 충분히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에 가졌던 무능력과 좌절감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벗어 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끼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누구랄 것도 없이 코끼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코끼리 사슬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삶에 길들여진 채 그런 자신을 연민하느라, 아까운 에너지를 역에너지로 쓰느라 삶에 지쳐버립니다. 무엇엔가 길들여진다는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리면 말뚝 주변을 자신의 한계로 정해버립니다. 심지어는 말뚝을 빼주어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인식이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도 존귀한 사람이고,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은사님 증손녀 미키처럼 이런 사랑을 받고 자란 아기는 갈팡질팡 제자리 걸음 하는 어린 코끼리가 아니라 가족들의 사랑을 힘으로 얻어, 앞으로 살아나갈 인생길, 그 길이 비록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마음속은 이미 자신만만함으로 충만해 그 길을 힘차게 걸어나갈 것입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