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의대 정원 증원과 숙의의 정치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의대 정원 증원과 숙의의 정치

박양진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 승인 2024-03-04 16:34
  • 신문게재 2024-03-05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2023112001001576700062641
박양진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의과대학의 신입생 정원을 현재보다 무려 65%나 증원해 내년부터 2000명을 추가로 모집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이래 의정 갈등과 의료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대하여 정부는 사법적 조치를 강행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고, 지난 주말에는 의사들의 총궐기대회가 여의도에서 열리면서 극한 대치 상태는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의사 숫자가 충분한 것인지 부족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어서 일반인이 판단하기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의사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주장을 설사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2천 명의 증원 규모가 적절한지는 합리적으로 논의해 볼 수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의사 숫자를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1만 명 정도 부족하다고 주장해왔다. 이 부족한 숫자를 채우기 위해 지금 3000명 수준의 의대 신입생 정원을 5000명으로 늘려서 2000명을 증원한다면 의대 교육의 수학 연한이 6년임을 감안할 때 지금부터 약 10년 후인 2035년에는 이 부족한 숫자가 모두 채워지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점에 다시 의대 입학 정원을 감축하지 않는다면 그 후 5년 후에는 1만 명, 10년 후에는 2만 명의 의사가 적정한 수요보다 초과하는 인력이 될 것이다. 정부의 정책 결정에서 장기적 계획과 비전은 찾아볼 수 없고 근시안적인 주먹구구식 사고방식을 여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강의와 실습, 임상 교육 등이 균형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의과대학 교육 역량을 한순간에 65%, 즉 2/3를 확대한다는 것은 대학교수의 입장에서 볼 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2천 명 증원 정책에 맞춰 교육 인프라를 단기간에 갖추기도 매우 어렵지만, 이렇게 갖춘 후 다시 의대 신입생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면 이는 엄청난 국가적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대학 특히 비수도권의 대학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미충원과 폐교의 위기 역시 역대 정부의 정책적 잘못이 초래한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이미 출생률 감소로 인하여 신생아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교육부는 수도권과 지방 대학의 정원을 무분별하게 증원해주었다. 이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된 요즘에는 이미 예상 가능했던 것처럼 미충원 대학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의 대부분인 84%는 비수도권대학이 감당하고 있다. 김포, 구리 등의 서울 편입 추진과 같은 정부 여당의 일방적인 수도권 과밀화 정책과 허울과 빈말 잔치에 불과한 이른바 '지방시대' 추진과 실질적인 지방 경시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 복지 혜택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의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고 일부 분야에서 부족한 필수 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의료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정책과 제도가 어떤 것이지 정부와 의료계는 함께 숙의하고 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한 논의의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의대 증원의 규모도 함께 결정할 수 있다.

의대 증원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다수가 찬성하는 것을 정부는 정책 결정의 중요한 근거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국가적 의제를 포퓰리즘에 기댄 여론 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국회의원 숫자를 65% 축소하거나, 국민연금의 수혜 금액을 65% 증액하거나, 의료보험 부담을 65% 감액하는 방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면 압도적인 찬성의 결과를 얻겠지만 그 결과에 따라 국가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는다. 정부와 의료계, 의과대학 교수 등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숙의의 과정을 거쳐서 의료 시스템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일방적이고 무모한 규모의 의대 증원 추진을 일단 멈추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박양진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구미, 주민안전 무시한 보행자 보도정비공사 논란
  2. 안양시, 평촌신도시 정비 ‘청신호’ 가속
  3. 영천, '신성일기념관 개관 기념' 고향사랑기부 이벤트
  4. "아산페이 안 쓰면 손해"-연말까지 18% 할인 연장, 법인 10% 연장 할인
  5. 아산시 음봉어울림도서관, '시선 너머의 이야기' 전시
  1. 순천향대, 취-창업박람회 개최
  2. 아산시보건소, 보건사업 우수사례 질병관리청장상 수상
  3. (주)서연이화, 취약계층에 이불 후원
  4.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5.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헤드라인 뉴스


"지역사랑상품권 지방비 최소분담률, 재정여건 따라 차등해야"

"지역사랑상품권 지방비 최소분담률, 재정여건 따라 차등해야"

국가 예산을 지원하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 시 자치단체가 부담하는 ‘지방비 최소 분담률’은 재정 여건에 따라 차등해야 한다는 평가 결과가 나왔다. 또 이미 보편화 됐지만, 운영자금이나 이자 수입 등 자치단체의 자금 관리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문제점도 제기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해 11월 14일 공개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및 관리체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는 자치단체는 모두 190곳(광역 17곳 중 11곳, 기초 226곳 중 179곳)으로 집계됐다. 상품권 발행액은..

한미 통상·안보 팩트시트 발표… 상호관세 15% 인하, 핵잠 승인 담겨
한미 통상·안보 팩트시트 발표… 상호관세 15% 인하, 핵잠 승인 담겨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 관세율을 포함한 한미 간의 무역 협상이 최종 마무리됐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한 양국의 안보 협상도 문서 형태로 공식화됐다. 대통령실과 백악관은 14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양국의 관세·안보 협상에 대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동시에 공개했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직후 나올 예정이던 팩트시트 발표가 지연되면서 세부 내용에서 이견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날 공개된 팩트시트에는 지난 정상회담 당시 발표된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전시의회, "대전교도소 이전 지지부진…市 대책시급"
대전시의회, "대전교도소 이전 지지부진…市 대책시급"

대전교도소 이전사업이 8년째 진척을 보지 못하면서 대전시의 명확한 추진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제기됐다. 교도소 과밀화와 시설 노후 문제는 이미 한계를 넘었지만, 이전 사업이 장기간 답보 상태에 놓이며 후적지 개발 계획 역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열린 대전시의회 제291회 정례회 도시주택국 행정사무감사에서 방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유성구2)은 "대전교도소는 수용률이 142.9%에 달해 전국 평균(122.1%)을 크게 웃돌고, 노후 시설로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 권고까지 받..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 ‘수능 끝, 해방이다’ ‘수능 끝, 해방이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