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선혜 대전보건대학 교수(부속유치원장) |
다시 17년 전으로 돌아가서 남은 이야기를 이어 보면, 당시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즐겁게 잘 지내고 오겠지' 그런데 상황은 내가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는 알파벳 쓰기를 숙제로 받아 왔는데, 아직 한글도 쓰지 못하는 아이로서는 매우 버거운 과제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다가 큰소리를 치게 되었다.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야" 라고 말이다. 결국 1주일 정도 다니고 그만두었다. 당시 필자와 아는 지인의 아이도 우리 아이와 같은 영어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 아이도 영어학원을 다닌지 1주일 정도 후 그만두게 되었다. 그 아이는 영어로만 말하는 원어민 선생님께로 다가가 선생님의 뺨을 때리며 큰 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한국말로 하란 말이야!"
필자는 본 칼럼에서 유아반이 있는 영어학원을 무조건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유아기 발달 특성을 고려한 영어교육은 어떻게 접근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다. 유아기에 하는 영어교육을 모두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유아의 발달에 적합한 영어교육은 어떠한 것인가는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아기 발달 특성이 고려된 영어교육 교수법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아이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으며, 아이의 정상적인 발달에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유아 영어교육에서 교재만 많이 사용하고 하루 종일 영어 학습과 관련된 것에만 집중하게 하며, 숙제와 암기 그리고 시험 결과 위주로 아이를 서열화 한다면 이것은 유아의 발달 특성을 고려한 영어교육 교수법이 아니라 성인이나 청소년 발달특성에 적합한 영어교육 교수법이라고 볼 수 있다. 유아기에는 모국어 습득이 매우 중요한 발달 과업 중의 하나이다. 모국어 습득은 자연스러운 모국어 사용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처럼 가정에서나 가정 밖에서도 한국말을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유아들이 외국어인 영어를 배우고 습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모국어를 습득해야 하는 유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영어에 더 집중하다가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대로 익힐 수 없게 되어 부득이 언어치료 기관을 다녀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유아기 영어교육에 열광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회구조에서 영어가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입학시험으로 시작해서 모든 공식적인 시험의 관문과 직장내 승진의 조건에는 여전히 영어가 버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경험한 세대가 결혼하여 자녀를 출산하면서 내 아이는 영어로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계층 구조를 형성하는데 필수 요소로서 영어가 존재하는 한 유아기에 시작하는 조기영어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은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서 고통스러운 과제로 존재하는 영어가 아닌 넓은 세상과 좀 더 자유롭고 즐겁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영어가 존재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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