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배재대학교 영어과 교수 |
최근 대학 입시에서 나타난 의대 쏠림 현상은 교육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를 불러왔다. 이로 인한 전공의들의 집단 파업과 증원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의 강대강 대치는 위급한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줄타기로 이어지고 있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이 시점에서 정부의 갑작스러운 의대 정원 대폭 증원은 우리 교육계의 의대 쏠림 현상을 보고 표를 의식한 정책 결정으로 보인다.
우리 영화계 천만 영화의 등장도 문화적 쏠림 현상의 일종이다. 이순신 시리즈의 첫 영화인 '명량'은 1700만 명의 관객을 모아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범죄도시' 시리즈는 3연타석 천만 영화로 등극했다. 최근의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도 1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집중 조명을 받았다. 천만이라는 수치는 우리나라 인구의 20%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의 영화를 관람한 역사적 기록이다. 반면에 다른 많은 영화는 이들 천만 영화들에 밀려서 개봉할 극장도 잡지 못 하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쏠림 현상이 가장 심각한 곳은 인터넷 공간이다. 포털 사이트들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공개해 접속자들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뜨거운 뉴스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대중들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높은 콘텐츠로 몰려가서 클릭을 하며 쏠림 현상에 편승하고 있다.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조회 수가 높은 콘텐츠를 덩달아 즐기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낮은 다른 정보의 선택권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대중들은 남들이 즐겨 보는 콘텐츠를 따라서 클릭하면서 함께 열광하며 한 놈만 패는 마녀사냥에 동참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거대한 쏠림 현상은 바로 서울 수도권 인구 쏠림 현상일 것이다. 2022년 12월 현재, 서울·수도권에 거주하는 주민등록 인구는 2598만5000명으로 대한민국 총인구의 50.5%이다. 수도권의 면적은 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11.8%인데 인구는 거의 50%가 몰려 사는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거주 쏠림 현상은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인구 절벽 현상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22년 말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인구 쏠림 현상은 지역 소멸로 이어지고 있어, 지방 대학교들의 존립 또한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쏠림 현상은 획일적인 교육을 양산해 오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초중등 교육은 대학 입시에서 '인서울'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의 적성과 흥미와 재능과는 전혀 무관한 전공을 선택하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서울에 소재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목표가 되었다. 이것은 고등학교 현장에서 모든 교육의 목표가 내신과 수능시험을 대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시험을 대비하는 획일적인 교육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죽이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쏠림 현상은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나타난다.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수많은 인파가 밀집된 골목에 갇혔는데도 후방에서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쏠림 현상에 올라타면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대중들의 무리에 동참할 때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지적, 육체적 노동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추락할 것이다. 더 이상 남들이 몰려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가는 쏠림 현상에 올라타서는 미래가 없다. 명저 '콘트래리언'의 저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한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검색어를 만들어 가야 할 시점이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따라가는 쏠림 현상에 올라타서는 혁신은 일어날 수 없으며, 위기의 시대를 맞아 진정한 성공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쏠림 현상에서 뛰어내리길 권한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영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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