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천 교수 |
바야흐로 2월의 대학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위한 졸업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물론 졸업은 소정의 학업 과정을 마친 것이기도 하지만 영어의 'commencement'의 의미처럼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므로 긴장과 설렘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된 졸업생들을 축복하고 응원하는 기꺼운 마음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맘때 나는 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후회가 밀려와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다.
특히 이번 졸업생들은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입학하여 교육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힘겹게 대학 생활을 보낸 세대들이다. 그래서일까?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시작할 졸업생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심란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 생활동안 추억할 여러 가지 고락들은 삶의 흔적으로 남아 그네들의 삶을 다채롭게 해줄 것이 분명한 것은 경험적 사실이지만, '지금 여기' 졸업생들은 장밋빛 미래의 설계보다 우선 당장의 냉혹하고 엄연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리 어떻게 할 도리 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내 마음은 갑갑하기만 하다. 디지털 활용 능력과 민감한 문화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세대들임에도 당연히 지녀야 할 청춘의 패기와 당당함보다는 과열되고 소란스럽고 성공을 재촉당하는 시대의 불운 속에서 힘겹게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운 심정일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전한(前漢) 시대에 흉노족 왕의 아내로 선발되어 끌려간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왔다 한들 봄 같지가 않구나)이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구절이 지금의 시대상과 졸업생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어 씁쓸하다.
돌아보니 30여 년 전 나의 삶도 지금의 졸업생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80년대 중반 나의 대학 생활은 황량했으며, 기대할 미래나 기댈 만한 버팀목을 찾지 못한 그야말로 삶의 공황기였으며 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한 미망의 시절이었다. 시대의 빈곤과 미래의 불안을 도서관에서 달래고 채웠지만 늘 허기지고 목말랐으니 그 시절 성장통의 시간이 나를 키운 8할이었다.
그러니 청춘들이여! 대추 한 알도 그 안에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맞아 붉게 익는 것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통찰을 기억하고, 순응이 아니라 역풍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양력(揚力)으로 삶의 비상을 꿈꾸기 바란다. 그리고 긍정이 주는 무한한 힘을 돛대 삼고,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벗들과 함께 노를 저으며, 창공의 별을 등대 삼아 삶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더욱이 공동체의 교양과 상식을 쉬지 않고 익히고, 시간이 주는 인고의 지혜를 터득하며, 겨울을 딛고 마른 나뭇가지에 새잎을 돋게 하는 약동하는 봄의 생명력과 복원력을 경이롭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문득, 나는 지난 학기 4학년 종강 시간에 학생들에게 전한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실린 우화인 한 노인이 보여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교훈이 새삼 떠오르면서, 이제 사회에 진출하는 청춘들이 인도 초기 경전인 '수타니파타'의 경구(警句)대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그리고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연꽃의 수심(修心)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진해 나아간다면 시대의 난관도 넉넉하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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