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
필자의 병원은 2016년 노조 결성 후 2017년, 2018년 2년 연속 파업을 겪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다음 해인 2019년, 파업 직전의 긴박한 상황에서 당시 필자는 진료부원장으로 협상 현장에 있었다. 막다른 상황에 이르지 않게 진심을 바쳐 협상에 임했다. 파업 시작 30분 전 극적인 타결을 보고 노사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밤샘 협상에 기력이 소진되어 몇 년은 더 늙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몸 담고 있는 소중한 일터의 위기 상황을 넘기고 정상적으로 환자 진료가 이루어지는 데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노사 양측이 서로 간의 이견을 좁혀 파업 없이 합의에 이른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 몇 차례 위기는 있었지만, 전면 파업 없이 건전한 노사관계가 이어진 바탕에는 상호간의 양보를 통해 3년 연속 파업의 위기를 모면했던 그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고 믿는다.
의료 기관의 파업은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에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이번 경우 엄밀히는 파업이 아니라 전공의 사직이지만, 환자 진료가 지장을 받는다는 면에서 파업과 유사하다. 이 상황의 해결 당사자는 정부와 의료계이지만, 실제 영향을 받는 것은 당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 나아가서는 전 국민이다.
현 사태의 촉발점이 된 의대 증원이 산적한 의료계 문제점의 바른 해결책인가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2000명 수준의 지나친 증원이 부실한 의대 교육과 배출되는 의사의 질적 수준 저하로 이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의대 증원이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의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소아과 오픈런 문제는 소아과 전문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아과 의사는 2000년 3375명에서 2022년 6222명으로 84%가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소아 환자 수는 986만 9975명에서 595만 3996명으로 40%가 감소했다. 즉, 소아과 의사는 증가하고 소아 환자 수는 감소했다. 그럼에도 소아과 오픈런이 생기는 이유는 특정 소아과 쏠림 현상과 소아과 전문의의 진료 이탈에 기인한다. 실제로 662개소에 해당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지난 5년간 폐업 신고를 하고, 그 의사들 중 상당 수가 피부, 성형 등 미용 분야로 옮겨 갔다고 한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수용력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몰리는 것이 더 큰 요인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의 2016∼2022년 현황 자료에 의하면, 중증도가 높아 응급이자 중증 환자군으로 판정되는 1∼3등급은 43.6%, 중증도가 낮아 비응급이자 경증 환자군에 해당하는 4∼5등급은 53.4%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가 급하지 않은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점유하여 진료 여력을 소진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경증이라도 아픈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상황이다. 응급실에 빈 병상이 없다고 경증 환자 한 명을 빼내고 새 중증 환자를 받게 한다면 당하는 환자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될 것이다.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국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렇듯 문제들은 복잡한 측면을 가진다. 대승적 관점에서 열린 마음으로 기존 정책만을 고집하지 말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주길 간절히 기원한다. 이런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라는 것을 모두가 명심했으면 좋겠다. 극단적인 대립으로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상황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의료 시스템을 소중히 여기고, 점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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