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정 충남대 이학박사 |
국제수면학회가 발표한 하루 권장 수면 시간은 평균적으로 영아기 약 14.5시간, 이후부터 3세 이하는 13시간, 3세에서 6세 사이는 12시간, 6세에서 12세 이하는 10.5시간, 청소년은 9시간, 18세 이상의 성인은 7.5시간이며, 노인의 경우는 인지능력 저하와 관련하여 5, 6시간 정도가 적합하다는 워싱턴 의대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수면은 렘(rapid eye movement: REM) 즉, 눈을 빠르게 움직이는 수면과 비렘(N-REM)수면으로 구분합니다. 렘수면에서, 우리 몸은 수면 중이지만 뇌는 특별한 작업에 돌입합니다. 낮 동안 학습한 내용을 분류·저장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버림으로써 다음날을 위한 뇌 가동률을 최적화시킵니다. 비렘수면은 뇌파의 종류에 따라 나뉘는 1, 2단계는 얕은 수면, 3, 4단계는 서파(徐波) 수면으로 숙면에 들게 됩니다. 1~4단계 수면이 한 주기로 90~100분 정도 소요되며 이 패턴이 하룻밤 3~5회 정도 반복됩니다. 3단계 전까지는 외부 환경 요인에 의해 쉽게 깨어날 수 있으나 4단계 서파 수면은 진폭이 느리고 큰 델타파 수면으로 그 고유한 리듬은 마치 종의 진동처럼 매우 평화롭고 부드럽습니다.
미국 보스턴대 로라 루이스 교수 연구팀은 서파 수면에서 뇌척수액이 파동으로 몸에 해로운 대사성 폐기물을 씻어내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젊은 시절의 수면 부족과 잘못된 수면 습관이 이 리듬을 망가뜨리기 시작하여 뇌 찌꺼기가 쌓이게 되면서 대략 50세 이후 불면증과 불안 증세를 유발하다가 알츠하이머형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으로 이어져 심각한 가족성 질병으로 연결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야심한 시간, 매일 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커다란 셔틀버스가 오가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인파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충분히 잠을 자도 모자란 우리 아이들은 쉬지 못하고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중압감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며 집으로 향합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법한 고요한 밤 자정 12시,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이 시간은 가장 활발한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시간이며 SNS 또는 게임으로 친구들과 소통하며 휴식이 이루어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은 결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청소년 인권과도 관련하여 진정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수면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이며 수면 부족국가 1위입니다. 한국전쟁 직후 거의 폐허가 된 대한민국은 이렇다 할 자원과 자본 없이 철강, 화학, 자동차, 반도체, 휴대전화 등 여러 분야에서 가파른 고도성장을 이루어 왔으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눈부신 발전을 단기간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성실성', 대중교육 확대로 인한 인적자본에 기인합니다. 밤낮없이 일하는 '불철주야', 장시간 근로로 인한 '쪽잠', 4시간 자면 합격이요 5시간 자면 불합격이라는 '사당(當)·오락(落)' 등의 잠과 관련된 말들이 어느새 우리에겐 '성공의 비결'로 자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나라는 이러한 '급성장의 부작용'으로 세계 1위 자살률, 청년 실업률, 저출산율 등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당면하고 있습니다. "넌 그러고도 잠이 오니?" 하며 잠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문화가 개인의 건강을 넘어 우리 사회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지금이라도 잠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오선정 충남대 이학박사, CMB '오선정의 힐링 테라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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