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일 북칼럼니스트 |
남아 있는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어린 소크라테스가 석공(石工)인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에게 일을 배우는 장면이다. "먼저 바로 그 돌 속에서 사자를 보아야만 한다. 마치 돌의 표면 뒤에 사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다음에는 사자를 풀어놓아 주어야 한단다. 그 사자를 잘 보면 잘 볼수록 어디를 얼마나 깊이 쪼아야 하는지 그만큼 잘 알게 되는 거지. 물론 그 후에 중요한 것은 연습과 훈련이란다." 돌 속에 갇힌 사자를 해방시키려면 사자가 아닌 모든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고?
어린 소크라테스는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새겼을 것이고, 세월이 가면서 점차 스스로 깨달았을 게다. 무형의 돌덩이에서 어떤 형상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그 형상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을 하나씩 제거해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즉 어떤 것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하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부수적인 것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바로 '부정, 제거, 빼기의 원칙'이다. 이 원칙이 처음에는 단지 석공 일을 하는 작업방식이었지만, '훈련과 연습'을 거치면서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 여기'라는 상황 속에서 진실과 사실의 가면을 쓰고 거짓과 가짜라는 '허튼소리(Bullshit)'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제거'(subtraction)의 사유와 삶의 양식'을 구현하기 위해 빼내야 할 앞자리에 있는 대상은 '헛소리 꾼'들이다. 그들은 그것이 거짓말이든 아니든 '주구장창 반복해 읊어대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아내곤, 그들이 발견한 '얼치기 지혜'는 "우기면 된다!"이다. '우기고, 우기고, 또 우긴다.'
먼저, 우리의 정치문화 속에서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실천할 '좋은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기에 앞서 '빼박'증거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만을 내뱉는 사람을 하나씩 빼보자. 단기적인 사욕을 얻으려 힘으로 밀어붙여 호가호위 하는 사람, 자기중심적 기억만으로 편집과 왜곡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남 탓만 하는 사람, 유체이탈 화법과 수동태로 위장언어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 자기 반문과 반성대신 관성적 사고로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 뺄 사람은 줄을 서 있다. 그렇게 시민으로서 우리 자신 스스로가 일상의 삶 속에서 '빼기의 참여활동'을 하다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는지.
평생 빼기라는 사유방식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다가 독 당근 즙을 마시고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말(logos)과 삶(bios)이 일치해야 한다는 비판적 태도의 모범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보여준 테스 형! 그는 말이 세상을 바꾸려면―진실이 거짓을 이기려면, 상식과 순리가 아우성을 극복하려면, 오만과 독선이 대화와 타협의 광휘 앞에 굴복하려면, 요컨대 세상이 바르고 선해 지려면―스스로 자신의 말을 육화(肉化)하는 행동이 반드시 요구됨을 '빼기의 실천'을 통해 보여주며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 있다.
우리의 사고와 삶을 옥죄어온 사소한 듯 작아 보이는 책상정리에서부터 무겁고 단단한 삶 속의 돌덩이들을 하나씩 부정하고 깨부수고 제거하고자 하는 희망은 때때로 불편하고 때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이란 '말'과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애쓰는 '행위'에 있음을 믿고 연습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다. 벌써 필자가 사는 아파트 방 창밖으로 한 겨울의 삭풍(朔風)을 견디어낸(빼낸) 목련꽃망울이 연한 아이보리색으로 변하면서 '희망의 봄바람'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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